▲2022년 12월 6일 낮 12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 김용균 4주기 현장추모제가 개최됐다. 김미숙 대표가 고 김용균 노동자 흉상에 자신의 목도리를 걸어주고 있다.
신문웅
아들 용균이를 못 본 지 벌써 4년이 훌쩍 지났다. 작년 4주기에도 어김없이 아들은 꿈속에 나타났다. 그런데 어둠 속에 있는 탓에 보고 싶었던 아들 얼굴은 볼 수 없었고, 만남의 기쁨보다도 서러움에 북받쳤다. 아들과 서로 붙들고 속이 타들어 가는듯한 울음을 토하다가 잠에서 깼다. 그리고는 아들 생각에 날을 새웠다.
나 혼자 있을 때는 스스로 '아들을 못 지킨 죄인'이라고 자책하기 일쑤다. 오늘 오전엔 '우리가 살아있는 자체가 아들한테 미안함이다'란 가시 돋힌 말로 용균이 아빠한테 생채기 내는 싸움을 걸었음에도,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미안함으로 더 가슴 아픈 아침이다.
평생 벌 받는 기분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어둠 속에 갇힌 것 같다. 죽는 그 순간까지, 이런 생지옥이 따로 있을까 싶다.
그런데 유가족이 이렇게 아픈 나날을 견디고 있을 때 가해자들은 발 뻗고 잘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울화가 치민다. 법과 제도가 약자를 위해, 적어도 목숨은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면 적어도 자식을 잃고 이렇게 아픈 설움을 겪지는 않아도 될 텐데... 이렇게 남겨진 삶이 억울하고 분하다.
지난해 이맘때쯤 고인이 되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의 말씀처럼, "이런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도 약자를 위해 연대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게 지금의 내 생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뒤 현실... '산재후진국' 대한민국
유족의 삶은 이토록 아프기에,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을 겪지 않게 하려고, 어렵사리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고 시행된 지 만 1년이 되어간다. 사실 법이 시행되면 산재사망 희생자가 줄어들 것이란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전년과 대비해 희생자 수가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다는 기사를 보니까, 기가 막히다. 심지어는 한동안 산재사망 희생자가 더 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노동부가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의 통계 기사를 보니 596명이 산재사망 사고를 당했는데(법이 시행된 작년 1월 27일~12월 31일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전체 사망자의 약 60%가 발생했다고 한다.
법 적용대상 사건은 229건인데, 현재 177건은 수사 중이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건 34건이다. 그 34건 중 18건은 종결되었고, 11건은 검찰이 기소를 했지만 재판 결과가 나온 건은 아직 한 건도 없다.
세계 경제 강국 상위권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건만, 산재사망은 개발 후진국 수준이다. 올해 경영계 신년사를 훑어보니, 대기업들에서 이제야 겨우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생겨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 경각심이 말에 그쳐서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그런데도 경영계는 법의 모호성과 실효성이 없다는 핑계로 최고책임자(CEO) 처벌을 면하게 할 안전관리자를 두고 안전관리체계 입증을 위한 서류작업에만 집중하고 있다. 결국 현장 사고 예방에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므로, 여전한 일터에서 죽는 노동자들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법 적용을 약화시키면서 기업이 원하는 대로 법을 바꿔주겠다는 기조인 정부의 말들은, 경영계가 더는 안전에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게 만들 것이다.
실질적으로 법의 실효성을 보려면 빠른 속도로 기소가 돼야하고, 실제로 처벌받는 판례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 사이에도 '위험한 현장을 개선할 안전 예산과 사람, 체계는 필수'라는 인식이 자리 잡힐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기소를 당해 재판 중인 두성산업이라는 곳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이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 기가 막힌다. 그러나 그래도, 이런 주장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재판관은 없을 것이라고 믿어보고 싶다.
산재로 죽은 아들, 비록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지는 못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