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들의 쉼과 여유를 위해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들과 백두대간 한남정맥 종주를 진행하다.
다산인권센터
2015년 <한겨레>에 인권활동가 생활 실태 르포가 실렸다. 현장에서 8년간 일한 상근자의 기본급이 107만 원으로 당시 최저임금 116만 원보다 적었다. 이 기사는 인권활동가들이 현장을 떠나는 이유를 생생한 인터뷰로 담았는데, 여기엔 "경조사에 참석하기 어려울 만큼 쪼들리는" 경제적 궁핍도 포함돼 있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인권 세상'을 외치면서, 정작 자신의 인권은 돌보지 못하는 불편한 현실이 민낯으로 드러났다.
이듬해 초 나는 인권위 동료들과 함께 가칭 '십시일반 기금'을 제안했다. 인권활동가와 인권위는 물과 고기의 관계인 만큼, 고기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힐링캠프를 만들어보자는 구상이었다. 인권위 직원 86명이 참여한 인권활동가 재충전 프로젝트 '일단 쉬고'는 그렇게 탄생했다. 훗날 '인권재단 사람' 관계자로부터 '일단 쉬고' 프로젝트를 수행한 활동가들의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무렵이었을 듯하다. 인권운동도 스포츠 경기처럼 브레이크 타임을 두면 더 팽팽해질 거라 생각했다. 수십 년 투신했던 노동운동을 정리하고 제주로 내려간 최창남 목사는 단박에 해법을 풀어놨다. "육 선생은 산을 잘 타시니 지친 일꾼들을 산으로 데려가세요."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지리산의 여름, 태백산의 겨울을 일별하기 위해 번개 산행을 추진했던 배경이다.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들과 백두대간 한남정맥을 종주한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경기도 안성에서 김포까지 1년 남짓 180km, 450리를 걸었다. 여름엔 솔밭에 누워 낮잠을 자고, 가을엔 숲길에 떨어진 알밤을 주웠다. 난개발로 길이 끊긴 벼랑에서 표지를 찾지 못하고 여러 시간을 헤매다 하산한 적도 있다. 우리는 그때 "茶山(다산)처럼 多山(다산)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다녔는데, 나는 지금의 다산인권센터 사무실이 팔달산 기슭에 자리 잡은 걸 다행스럽게 여긴다. 벗들이시여, 모쪼록 팔달산 정기를 품고 오래 버티시길 빈다.
얼마 전 인권단체에서 20년 일했다는 활동가로부터 초대장을 받았다. 지나온 20년을 기억하며 반가운 얼굴들과 술 한잔 나누자는 일종의 '서프라이즈 파티'였다. 나는 인권운동판에서 이런 자리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비록 발 딛고 선 현실이 우울하더라도 동료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는 멋진 만남이 자주 펼쳐졌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운동이라야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산의 자랑, 먹거리 인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