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저항하는 시인의 진심을 담았습니다

김승일 시인의 시 '인간이 되어 가는 저녁'

등록 2022.10.06 13:38수정 2022.10.1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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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인간이 되어 가는 저녁 

커터날이 부러져 버린다


몇 번 긋지도 않았는데

- 김승일, <나는 미로와 미로의 키스>, 시인의 일요일, 2022년, 80쪽


프로메테우스의 김승일 시인이 두 번째 시집을 발간했습니다. 첫 시집이 2016년이니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발간한 것입니다. 오래 기다려온 시집입니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동안 시를 읽고 소개해온 시인의 감각으로서 이 시집이 '문제작'임을 미리 알았기 때문입니다. 폭력이라는 소재만으로도 한 권의 시집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시집에서 얘기하고 있는 얘기 또한 충격적입니다.

제 눈에 들어온 시는 바로 '인간이 되어가는 저녁'이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이지만, 커터날이 내 가슴을 헤집는 것처럼, 난도질합니다. 몇 번 긋지도 않은 커터날이 부러져 버릴 정도라면, 얼마나 세게 손목을 그은 것일까요.

이 시를 소개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한편으로 '걱정'된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 자극적인 시를 읽었지만, 이만큼 강력했던 시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폭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관점에서 소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시는 자살에 대한 방조나 동기부여가 아니라, 그 반대의 시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자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합니다. '자살을 위한 자해'와 '비자살적 자해'. 우리가 알고 있는 자해는 보통 후자입니다.
 
 김승일 시인의 시집
김승일 시인의 시집시인의 일요일

비자살적 자해가 발생하는 까닭은 고통을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고통의 파고를 이겨내기 위해 자해를 한다고 합니다. 힘드니까, 자해를 한다는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왜? 고통에 고통을 더하려고 할까. 고통을 고통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런다고 속이 풀릴까.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 일에 몰두한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또는 높은 산을 올라서본 경험이 있으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방법이 다를 뿐, 같은 것입니다.


이 시의 화자는 왜? 커터날이 부러져 버릴 정도로 손목을 그으려고 했던 것일까요. 김승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나는 미로와 미로의 키스>는 폭력에 저항하는 시집입니다. 이 시집에는 여러 폭력에 노출된 화자가 등장합니다. 학교에서의 폭력, 군대에서의 폭력, 사회에서의 폭력... 모든 폭력이 등장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시인이 직접 겪은 폭력이거나 또는 저 폭력을 당한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쓴 시라는 것입니다.
 
박 일병은 LPG가스를 틀어 놓고 잠을 잤고
새벽에 담배 피우러 나온 심 병장은 우리를 살렸다
아침까지 계속된 구타는 어떤 간절함일까

'우린 적들의 총탄에 맞아 죽을 일이 없을 것 같아 …' 중에서

폭력은 '감추고 싶은 사실'입니다. 감추고 싶다는 의지는 한 개인의 입장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입장일 수도 있습니다.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공간이라는 것이 알려진다면, 그곳이 어디이든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쉬쉬합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회사에서, 가정에서, 국가에서....

가려진다고 가려질 수 있습니까. 숨긴다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릴 수 있습니까.

우리는 치료가 필요한 사회를 사는 개인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오랫동안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 왔기 때문에 폭력이 폭력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요, 커터날이 부러질 정도로 손목을 그어야만, 조금이라도 눈길 주는 사회라면, 그 사회를 과연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겠습니까?

우리 가슴속에 꿈틀거리는 것이 폭력의 불길이 아니라 따뜻한 연민이었으면, 사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김승일 시인은...

2007년 <서정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프로메테우스』 등이 있다. 각 지역의 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동네책방에서 시 낭독회와 시 창작회를 하고 있으며, 학교폭력 예방·근절 운동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김승일시인 #시인의일요일 #인간이되어가는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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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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