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배우 라미란씨의 입간판 옆에서 찍은 인증샷과 함께 트위터에 올린 글
김진태 트위터
"영화 '정직한 후보2' 시사회를 가졌습니다. 라미란씨가 국회의원에 떨어지고 강원도지사가 돼서 겪는 스토린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강원도청 올로케여서 실감났고요, 거짓말을 못한다는 설정까지 딱 제 얘기더라고요ㅋ."
지난 26일 김 지사가 배우 라미란의 입간판 옆에서 찍은 인증샷과 함께 본인 소셜 미디어에 공유한 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짧은 글에 흥미로운 지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정치인인 김 지사가 거짓말을 잘하는지 못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치풍자 영화인 <정직한 후보2> 속 정치인 '진실의 주둥이' 주상숙(라미란)이 거짓말을 못한다는 설정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현실 정치인들에 대한 직설적인 풍자다. 잠시 영화를 소개하자면 선거전을 그린 1편에 이어 2편은 지자체 내 이권 다툼과 건설 마피아, 이에 기생하는 비리 공무원들을 속 시원하게 까발린다. 영화는 이에 편승하려던 주상숙도 거짓말을 못 하게 되면서 제정신을 차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주상숙은 강원도지사에 당선하고 나서 인기를 누리며 오만해졌지만 결국 도민과 정의를 위해 싸우게 된다. 그런 주인공과 본인이 닮았다는 김 지사의 주장은 영화의 배경이 강원도와 강릉이라는 것 말고는 핀트가 어긋나도 많이 어긋나 보인다. 이 같은 김 지사의 게시글이 1편에 이어 흥행이 기대되는 상업 영화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자기 홍보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28일 개봉한 <정직한 후보2>의 배급 담당자가 딱 그랬다.
"지사님... 저 이 영화 배급 담당자인데요. 일단 강원도청 올로케도 아니고요. 이 트윗 덕분에 평점 테러 당하고 있어서 죽을 맛입니다. 전임 도지사님 때 찍은 영화인데 왜 숟가락을 올리실까요. 살려주세요. 여러 사람들이 이 영화에 목숨 걸고 일했고 흥행 결과에 밥줄 걸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ㅠ.ㅠ"
28일 오후 읍소에 읍소를 거듭하는 트위터 글이 화제가 됐다. 실제 <정직한 후보2>의 배급사 직원이 게시한 이 글에 격한 호응이 이어졌다. 정작 촬영을 허락해 준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는 별다른 반응이 없는데 김 지사만 숟가락을 얹은 것이요, 자신과 크게 상관없는 영화에 숟가락을 얹으려다 이제 막 개봉한 영화의 수많은 관계자에게 피해만 입힌 꼴이 됐다. 예산과 같은 영화 촬영의 현실적 이유로 '강원도청 올로케'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김 지사는 애먼 영화를 홍보 수단으로 삼으려던 자신의 행위가 도리어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 평점 테러라는 어마어마한 악영향으로 되돌아올 것을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배급 담당자가 읍소에 읍소를 거듭했는지, 왜 관객들이 눈살을 찌푸리는지 이해는 하고 있을지 의문이다(29일 오전 9시 현재 이 글은 비공개로 전환된 상태다).
"죽을 맛"이라는 영화인들
국제영화제 폐지와 정치풍자 영화에 숟가락 얹기. 영화라는 문화예술에 대한 김 지사의 이중적인 인식과 그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해당 영화는 부패하고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인들을 정면으로 파헤치는 영화 아닌가. 김 지사의 게시글 자체가 블랙코미디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영화제에 밥줄이 걸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영화제 내 개별 정규직·비정규직들의 밥줄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네 번이나 진행된 국제영화제를 구체적인 조사없이 "일회성·선심성 행사"로 규정해 버렸다. 이후 "도민 혈세 수십억 원"이란 경제 프레임에 몰아넣고는 스스럼없이 자기 정치를 강행해 버렸다.
거기에 영화제가 지닌 문화예술로서의 가치 및 기대 창출 효과, 관광산업과의 연계 등 경제적 파급력에 대한 고려가 자리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그랬던 김 지사가 애먼 상업영화를 자기 정치 홍보의 일환으로 활용해 보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정직한 후보2>의 배급사 담당자 트위터 글 또한 단 몇 시간 만에 수천 회가 리트윗됐고, 김 지사를 질타하는 글이 쏟아지는 중이다.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22억짜리 국제영화제 구성원들의 밥줄을 단숨에 끊어버리고, 또 본인 홍보에 도움이 된다면 애먼 영화에 숟가락을 올리는 행태에 대한 질타도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