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 대안으로 마련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에 포함된 법률안
참여연대
의원 발의안만 가지고 논의했을까요? 아뇨. 우리 시민들에겐 '이 법을 만들어달라', 또는 '이 법을 바꿔달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인 청원권이 있습니다. 각 위원회는 국회에 접수된 청원에 대해서도 심사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10만 명의 서명을 모아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위원회 대안에 최종적으로 반영되지는 않았습니다.
왜 대안에는 청원안이 제외되었을까요? 그리고, 여야를 막론하고 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하며 여럿 발의된 이 법은 왜 그렇게 논의가 지연됐을까요?
중대재해처벌법 통과 과정으로 돌아본 21대 전반기 - 정당들의 입장은?
2020년, 더불어민주당 180석으로 시작된 21대 국회에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거는 기대는 참 많았습니다. 2018년 말, 노동자 고 김용균씨가 현장에서 안타깝게 사망한 뒤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필요성이 더 크게 제기되면서 법안 처리 가능성이 열린 때였죠. 2020년 11월, 당선 이후 첫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당대표는 정기국회 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약속했습니다.
그 뿐일까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위한 '의외의 연대'도 있었습니다. 2020년 11월 10일,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주최한 <중대재해 방지 및 예방을 위한 정책 간담회>에 국민의힘 김종인 당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가 참여해 초당적 협력을 약속한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힘과 정의당도 제정에 한 뜻을 모은 것처럼 보였으나 정기국회 내 처리는 또 다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제정법'이어서 공청회 등을 거쳐야 한다는 이유로 법안 처리를 지연시켰거든요.
정기국회 막바지에 다다른 12월 2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공청회에는 10만 명의 서명으로 접수된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공청회 심의대상 목록에서 제외되었고, 노동계는 빠진 채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사업주 단체로 참석하도록 했습니다. 노동자의 안전 보호를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요구하는 노동자와 시민의 당연한 요구에 대해, 국회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드러나는 단적인 사례 중 하나였습니다.
노동계 출신인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공청회 전날인 12월 1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빠진, 부족한 법안이었지만 법안을 발의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제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안 뿐만 아니라 10만 명의 국민동의청원까지 접수된 상태로, 더 이상 법안 심사를 늦출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국회 법사위는 12월 4일 소위원회와 7일, 8일 전체회의에도 중대재해처벌법 상정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법 심사에 돌입한 건 2020년이 끝나가는 12월 24일입니다. 늦었지만 제대로 된 논의가 시작되나 싶었지만,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일방적 법안소위 소집에 반발한다며 회의를 보이콧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안 3개(박범계, 박주민, 이탄희 의원 발의안)를 단일안으로 만들어 올 것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여야의 입법 책임 미루기로 2020년 정기국회 내 제정은커녕 기어이 해를 넘기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2021년 1월 5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임시국회 입법 현안에 대한 회동에서 본회의 일정과 중대재해처벌법 처리에 겨우 합의했습니다. 이후 법안 논의에 속도가 붙어 1월 8일에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통과 과정으로 돌아본 21대 전반기 - 어떤 법안이었나?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 현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시 말단 관리자가 아닌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형사처벌 하한형을 규정함과 동시에 특수고용노동자와 하청노동자에 대한 중대재해, 그리고 시민재해에 대한 원청을 처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상과 직업병이 발생했을 때에도 책임을 묻고, 시민재해를 법적용 대상에 포함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 등을 규정한 것이죠.
하지만 법 제정과정에서 후퇴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백혜련 법안심사소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에 5인 미만 사업장 포함 여부를 두고 논의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며, '그냥 산업재해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하겠다'고 핵심 쟁점이었던 사안에 대해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아쉬운 부분이 참 많습니다. 경영책임자를 '대표이사 또는 안전보건 담당이사'로 협소하게 규정했고요, 하청노동자가 산재를 당하는 이유가 발주처의 공사기간 단축에 있다는 공공연한 사실을 외면한 발주처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일터 괴롭힘도 법적용에서 제외됐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업장이 속해 있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3년 간 적용을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인과관계 추정 도입과 불법인허가와 부실한 관리감독을 한 공무원 처벌 도입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통과 과정으로 돌아본 21대 전반기 - 누가 표결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