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완 목사, 양재성 목사, 수경스님, 도법 스님, 최상석 신부, 홍현두 교무, 최종수 신부 등 4대 종단 성직자 및 환경운동가 20여명으로 구성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12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전망대를 시작으로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100일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애기봉전망대에서 열린 행사에서 김지하 시인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逆天(역천, 하늘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권우성
그는 스스로 '최후의 국내파'로 불렀다. 1990년대의 이른바 국제화 시대에 한 번도 외국을 다녀오지 않았다는 데서 만든 은유였다.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그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지 못했다. 1970년대 이후 그의 구명운동에 헌신해온 일본 지인들의 초청을 받고도 연기를 거듭하였다.
기인 감옥살이에서 풀려났을 때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에서 아주 좋은 조건으로 초청했으나 사양했고 미국의 하와이대학이 전 미국 대학 순회강연을 제의해 왔을 때도 거절했으며, 여러 번 일본측 초청을 어물어물 뒤로 미루어 왔다.
한 번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노신영 씨가 나의 해외 유람을 집요하게 설득해 왔으나 완곡히 사절했으며 또 한 번은 저 유명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미국 거점인 뉴욕 사회과학대학원 대학이 박사학위를 준다고 정중히 방미를 요청해 왔지만 이 역시 정중히 사양했었다. (주석 4)
민주화가 진척되고 위험인물 리스트에서 벗어나게 되어 '최후의 국내파' 위상을 더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첫 여행지 홍콩과 베트남은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에 참여하면서 이루어지고, 일본을 전후 다섯 차례에 걸쳐 다녀온 것은 학술대회ㆍ강연 등의 목적이었다.
2004~5년에 집중된 해외여행은 "새로운 문명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기행"이었다. 초청강연 차 일본에 처음으로 간 것은 1998년 겨울이다. 홍콩과 베트남 이외의 여행은 부인 김영주와 함께였다.
백두산에 가기 위해 중국을 거쳤다. 중국의 여러 지역을 돌아보고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순방하였다. 알마티, 비슈케크, 이시쿨, 다스미아, 타슈켄트, 사마칸틔, 아무르, 바이칼, 마하, 하바로브스크, 비애라, 캄차카반도를 둘러봤다.
유럽은 프랑크푸르트, 프라하, 빈, 아테네, 로마, 파리, 런던, 미국은 보스턴, 뉴욕, 애틀랜타, 뉴올리언스, 휴스턴, 댈러스, LA,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니언, 플레그스태프와 세도나, 제롬시티, 프레스콧, 팜 스프링스, 워싱턴DㆍC, 베트남은 하노이, 다낭, 후에 등이 그의 여행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