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핀맨으로 불리는 이정준감독은 2015년부터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기록하고 있다. (무단사용 및 재판매 DB금지)
이정준
제주 해안가를 걷다 수면 위로 솟구쳐오르는 남방큰돌고래 무리를 마주치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물에 포획돼 공연 업체에서 돌고래쇼를 하다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지고, 결국 극적으로 김녕 바다에 방류된 제돌이가 떠오르기도 한다.
우리는 고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남방큰돌고래와 한국 토종 돌고래 상괭이를 따라다니며, 고래의 모습을 담은 다큐 <돌고래와 나>, <한국에 돌고래가 산다>, <쇼 돌고래의 슬픈 진실>, <바다의 경고 1부 - 사라지는 고래들>, <바다의 경고 2부 - 귀신고래를 찾아서>, <상괭이가 사라진다> 등을 만든 이정준 다큐멘터리 감독을 최근 서울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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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그동안 제주 남방큰돌고래와 한국 토종 돌고래 상괭이의 수중 생태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셨는데 언제부터 다큐 작업을 시작하셨는지, 지금은 주로 무엇을 촬영하시는지 궁금해요.
"다큐 감독을 하기 전, 제 직업은 스쿠버다이빙 강사였어요. 다이빙 강사 일을 하면서 언젠가 동해의 참돌고래, 서해와 남해의 상괭이, 제주의 남방큰돌고래, 전역의 밍크고래 등 한국 바다의 모든 고래류를 영상에 담아 세상에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했고요. 특히 한반도 연안에서 관찰되던 귀신고래를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했어요.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는 이름에 한국(Korea)이 들어가 있을 만큼 상징성이 있는데, 57년 가까이 우리 바다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어요. 우리가 잃어버린 귀신고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다큐 작업을 시작하게 됐고, 본격적으로 고래의 수중 생태를 기록하기 시작한 건 2015년부터에요.
고래의 생활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려면, 바다에서 계속 지내면서 촬영 장비 등 여러 준비가 필요해요.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촬영하기 시작했어요. 현재는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생활과 서해안에서 혼획으로 많이 죽는 상괭이를 집중해서 찍고 있어요."
- 우리가 잃어버린 귀신고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네요. 예전에는 우리나라 바다에서 귀신고래가 새끼를 낳고 지냈던 걸까요?
"귀신고래는 머리, 옆구리, 등에 고착생물인 따개비, 굴 껍데기, 조개삿갓이 붙어있거나 부착했다 떨어진 흔적 때문에 검은 피부에 회색 반점이 잔뜩 덮인 것처럼 보여요. 연안 가까이에서 불쑥 튀어 나와 놀라게 하는 것이 귀신같다 하여 귀신고래라는 이름이 붙여졌어요.
귀신고래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 2개의 계군(형태적·생태적·유전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가진 개체군)으로 나눕니다. 동쪽에는 알래스카와 캐나다, 미국, 멕시코 연해를 오가는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Californian Gray Whale)'가 있고요. 서쪽에는 러시아 오호츠크해 바다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남쪽 바다를 오가는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가 있어요. 둘다 겨울이 되면 새끼를 낳기 위해 남하를 해요. 이러한 내용은 '로이 채프먼 앤드류'라는 미국인 동물학자가 1910년대에 고래 연구를 하고, 귀신고래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밝혀졌어요.
앤드류는 당시 울산 장생포에서 새끼를 낳기 직전의 귀신고래 암컷들이 잡히면서 한국 남해안을 귀신고래 번식장이라고 지목했고, 한국계 귀신고래라는 이름을 붙인 거죠. '울산 귀신고래 회유해면'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지만,1965년 이후 우리 바다에서 귀신고래를 발견한 적이 없어요."
- 실제 귀신고래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러시아 사할린과 멕시코 바다에서요. 2019년에 취재하러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 게레로 네그로에 갔는데, 거기서 수백 마리를 봤어요. 동태평양 개체군인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는 멕시코 바다에서 번식하거든요.
우리나라도 울산 암각화와 옛 문헌에 귀신고래 기록이 있고, 고래가 참 많았다고 하죠. 선조들은 동해바다를 경해(鯨海)라고 부를 만큼 고래가 가득한 바다였는데 포경으로 남획되면서 거의 사라졌어요. 고래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났겠죠. 저 길로 가면 죽는다, 다른 길로 가자라고요."
"죽어가는 고래와 눈 마주쳐... 그 모습 잊히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