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아이 나름의 방법으로 부모를 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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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런팅의 정의를 바꿉니다
- 부모인 저의 입장에서도 '아이 키우는 사람'이라는 정의가 답답했는데 아이 입장까지 생각하니 끔찍하네요. 그럼 부모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같이 '페어런팅'의 정의를 생각해보시면 좋겠어요. 저에게 부모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 계기는 막내 현우가 4살 무렵에 있었던 일상적인 경험이었어요. 급성 편도염 때문에 컨디션이 갑자기 안 좋아졌어요. 열도 나고 몸살도 심한 상태로 겨우 퇴근을 했는데 다행히 남편이 일찍 와있더라고요.
남편과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침대에 누웠지요. 그런데 한 5분이나 지났을까. 문이 열리더니 현우가 들어오는 거예요. 짧은 다리로 낑낑대며 침대에 올라오더니 저를 꾹꾹 밟으며 침대 머리맡까지 가서 무언가를 부시럭거리더니 내려가요. 몸살 난 상태에서 밟히니까 정말 뼛속까지 아프더라고요."
- 아이는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전 남편에게 화가 났을 것 같아요. 아이랑 좀 놀아주지…
"저도 그 순간 욱하고 화가 올라왔는데… 일단 아이가 나갔으니 참았어요. 그런데 조금 지나 또 들어와요. 또 저를 밟고 지나가 침대 머리맡에서 부시럭부시럭, 그리고 반복 또 반복. 화가 나는데 화를 낼 힘이 없었어요. 지나고 난 지금은 이날 화를 낼 힘조차 없었던 게 두고두고 감사해요.
그러던 중 잠이 들었고, 한두 시간이 지나 일어났던 것 같아요. 눈을 떴는데 침대 머리맡에 종이로 만든 엉성한 꽃 열 송이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거예요. 딱 봐도 누구 작품인지 알겠어요. '현우야~ 이게 뭐야?' 물었더니 너무나 해맑은 얼굴로 '으응... 엄마 빨리 나으라고~' 하는 거예요."
- 세상에… 엄마가 걱정되고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꽃을 만들고 붙인 거군요.
"그때 모든 게 잠시 일시정지 되는 것 같았어요. 지금도 그 순간이 생각나는데요. 그전까지 전 부모인 제가 아이를 돌보고 키운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엄마인 저를 돌보고 있었던 거예요. 돌본다는 게 단순히 부모와 아이 사이를 수직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행위가 아니었던 거지요.
그 순간, 어린 시절 엄마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 하던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저녁 무렵이 되면 감자를 깎기도 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목욕을 시키기도 했어요. 엄마가 막내를 임신했을 때, 입덧 하는지도 모르고 밥을 못 먹고 누워있는 엄마가 걱정되서 라면스프 국물에 밥을 넣고 끓여서 가져가던 모습도요.
가정 형편이 넉넉치 않다고 느껴질 때면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서 학교에 가곤 했어요. 저도 제 나름대로 엄마, 아빠를 돌보며 살아왔더라고요. 아연님도 그런 기억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