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 "'수포자'에서 '천재수학자'로… '인생도, 수학도 성급히 결론 내지 마세요'"(왼쪽)와 7월 6일 자 <동아일보> 기사 "시인 꿈꾼 고교 자퇴생 '수학계 노벨상' 품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수포자'에서 한술 더 떠서 '공부를 놨던 고교 자퇴생'이란 표현을 썼다. 이 표현을 보면서 나가도 막나가는구나 싶었다.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놓고서 과연 서울대학교를 갈 수 있었을까? 물론 천재면 가능하지 싶다가도, 오히려 천재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일었다.
여러 비판을 받은 탓인지 글을 쓰면서 검색해봤더니 '공부를 놨던'이란 수식어를 '시인을 꿈꾼'으로 바꾸었다. 허준이 교수가 고등학교 시절 시인을 꿈꾼 것은 본인의 말로 확인되었으니 무리가 없다. 그러나 '고교 자퇴생'이란 표현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인터뷰 기사를 뒤져도 어느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했는지 나오지 않았다. 시인을 꿈꿨고, 야간자율학습이 건강에 좋지 않아 그만두었다고 전하고 있다. 흔히 나오는 고교 시절 은사를 찾아가 학창 시절 어땠는지 물어보는 기사도 나올 만하지만, 그런 기사 역시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고등학교 중퇴 이후 과외 선생의 인터뷰 기사가 떴다. 과외 선생을 했던 분은 현재 모 대학의 교수로 계신 분인데, 과외를 할 당시에는 서울대 박사과정생이었다고 한다. 이 기사에서 허준이 교수의 모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학비리로 유명하여 여러 차례 내홍을 겪었던 강남의 S고등학교였다. 이 정도로 팩트 체크를 하고 나면 허준이 교수가 범상치 않은 과정을 거쳐 서울대에 입학하였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의 함의는 매우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 관련해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함부로 영웅 서사를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영웅 서사의 선호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도 학창 시절 수학을 못했다는 도시 전설이 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물론 천재급 학자들 틈에 있으면 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천재성에 비하여 못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수학 실력이 보통의 수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정도의 실력으로는 아무리 옆에서 도와줘도 노벨상을 탈 수는 없다.
허준이 프레임
학력고사 수석 시대의 보도가 오늘로 이어진 것이 만점자 보도이다. 교과서 위주로 예습, 복습을 충실히 했더니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는 기사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공부한다고 해서 누구나 수석이 되는 건 아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수석이나 만점자를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관행을 자제하자는 신사협정이 나온다면 만점자 관련한 보도가 안 나오겠지만, 어느 순간 불문율이 깨지면 영웅 서사라는 조미료가 가미된 보도들이 나온다. 전국체전 금메달도 아니고 이런 경마식 보도는 교육에는 절대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고교 중퇴라는 사실과 수포자라는 단어에서 한국의 교육 현실을 호도하고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정작 당사자는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국내파라고 강조하고, 한국 교육에 대한 직접적 비난을 하지 않았음에도, '허준이'라는 필즈상 수상자를 영웅서사와 한국 교육의 희생양이라는 프레임에 끼워 맞추는 사람이 많다.
서두는 필즈상으로 시작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필즈상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는 한국 교육에 대한 시선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계기로 드러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내는 기사가 나온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필즈상 수상이라는 상에 집착하고, 수포자라는 담론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식의 시선은 그 자체로 한국 교육에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언젠가 동네 수학 학원에 어느 전교 1등이 다닌다고 했더니 그 학원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학원에서 전교 1등이 배출되면(?) 학원 현수막도 달고 학원 앞에 관련 내용도 붙이면서 홍보를 한다. 그러면 많은 학부모들이 그 학원에 몰려간다는 것이다.
교육에 대한 이중적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