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의도 생가 김대중 추모관
박도
낙도의 기적
'전국 1일 생활권'이라는 말이 나온 지 꽤 오래됐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태어나고 유소년 시절을 살았던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는 아직도 그 말이 통하지 않는 멀고 먼 외딴 낙도(落島)였다. 나는 2년 전, <오마이뉴스> 시리즈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를 쓰면서 여러 전직 대통령의 생가를 현지 답사했는데 하의도만은 당일치기로 취재하지 않고 이틀 일정을 잡았다.
2020년 7월 3일 이른 아침 원주를 출발해 그날 밤 목포항 부두 숙소에서 1박을 했다. 다음날 새벽 5시 30분 발 하의도 행 여객선을 탄 뒤 오전 8시 40분에야 후광마을 김대중 생가에 이르렀다. 그곳 추모관에 들르자 방명록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일필휘지로 남겼다.
"낙도의 기적!"
그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이후 김대중의 전생애를 추적하면서도, '낙도의 기적'이라는 글귀는 그의 생애를 잘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무엇이 '낙도의 기적'으로, 외딴 섬마을 소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을까?
그 답은 김대중 본인의 불같은 신념과 끊임없는 노력(독서)이 밑바탕으로 작용했을 테다. 하지만 그 뒤에는 한 여성이 있었다는 것을 이희호 자서전 <동행>에서 곧 찾을 수 있었다.
1998년 2월 25일 제15대 대통령 취임식 날, 청와대 안방에서 부부간 나눈 이야기다.
내외가 방 한가운데 나란히 앉아 9시 뉴스를 보면서 오늘의 행사를 되새겨 보니 새삼 감격스러웠다.
김대중 : "갖은 고난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으니 우리 이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합시다."
이희호 : "드디어 대통령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국민들 잘 살게 해 주세요. 진심으로 축하해요."
김대중 : "당신도 수고가 많았소."
이희호 : "내가 한 일이 뭐 있다고."
김대중 : "아니오. 당신이 없었으면 나에게 오늘이 있었겠소."
그가 나의 손을 쥐었다. 긴장된 긴 하루였다. - 이희호 지음 <동행> 323쪽
흔히들 한 인물 뒤에는 어머니나 아내가 있다고 한다. 누가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을까? 나는 이희호의 자서전 <동행>을 덮고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이미 김대중 자신도 "당신이 없었으면 나에게 오늘이 있었겠소?"라고 그 모든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