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이 전국 86개 시험지구 1,300여 시험장에서 일제히 열린 2021년 11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제15시험지구 제20시험장)에서 수험생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대입 준비를 위한 훈련소로 전락한 현실에서 그들의 홍보 전략은 시나브로 먹혀드는 모양새다. 실제로 자퇴한 제자 중의 다수는 수도권의 기숙형 학원을 거쳐 갔다. 어느 유명 기숙형 학원은 들어가기가 웬만한 서울 소재 대학 입학보다도 어렵다고 한다.
문제는 희망도 복안도 '돈'으로 수렴된다는 점이다. 가난하면 희망이 보이지 않고 복안을 떠올릴 여유조차 없다. 설령 교내 시험을 죽 쑤었다 한들 애초 자퇴를 꿈꿀 수 없다는 이야기다. 아닌 게 아니라, 명문대 진학을 위해 자퇴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경우다.
이른바 '돈 있고 빽 있는' 집안의 아이에게 정시는 '패자부활전'으로 여겨진다.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도전이 가능할 만큼, 대학 입시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불공정한 경쟁이다. 특히 정시 대비를 위해서라면 공교육은 사교육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몇 해 전 지방에 있는 한 자사고의 대학 진학 실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해 360명의 졸업생 중 275명이 의대에 진학했다는 깜짝 놀랄만한 뉴스였다. 평소에도 의대 진학률이 전국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드는, 이른바 '자사고 중의 자사고'로 알려진 학교다.
뉴스는 해당 학교의 과장된 홍보에 따른 오보로 판명됐지만,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재수생을 포함해 의대와 치대, 한의대를 178명을 보냈다는 '한참 모자란' 수치에도 '의대 사관학교'라는 별칭은 그대로 남았다.
해당 학교의 압도적인 진학 실적의 요인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바로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와 삼수, 이른바 '장수'도 불사하는 학교의 '전통'에 있었다. 의대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결코 수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시에 강한 학교'라는 이미지도 그렇게 생겨났다.
도박판에서 최종 승자는 종잣돈이 많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돈을 잃는다고 해도 그때마다 두 배로 베팅할 수 있는 사람이 끝내 판돈을 거머쥐는 건 당연지사다. 정시도 별반 다를 것 없다. 퇴로가 없는 대입 경쟁에서 걱정 없이 '장수'할 수 있는 아이들이야말로 '갑'이다.
대통령이 9수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이나 시험 뒷수발을 해줄 수 있는 집안은 그리 많지 않다. 그가 '고시 낭인'으로 전락하지 않은 이유도 부유한 가정환경 덕이라고 한다면 과연 지나친 말일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있는 세상
이런 반론이 나올 순 있겠다. 기본적인 머리가 없으면 돈으로도 수능 점수를 살 수 없다는. 곧, 공부를 뒷받침해줄 형편이면 유리하긴 해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뜻일 테지만, 요즘엔 그 말마저 틀린 성싶다. 어느덧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바야흐로 자퇴조차 돈이 있어야 가능한 시대다. 내신을 망쳤다면 정시에 '올인'하면 되고, 한 번으로 어렵다면 될 때까지 도전하면 된다. 이조차 힘들고 귀찮다면 '돈 있고 빽 있는' 아이일수록 얼마든지 '차선책'이 있다. 비교과 활동을 중시하는 외국 대학으로 눈을 돌리면 된다. 유학파를 국내파보다 우대하는 우리 사회의 뒤틀린 현실에서 그것은 어쩌면 차선이 아니라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자퇴를 고민하는 한 아이에게 '기회비용'을 떠올려보라고 조언해주었다. 고등학교 때 사귄 친구가 평생을 간다고, 또 학창 시절의 추억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대인 관계 역량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말에 그는 심드렁한 얼굴로 이렇게 대꾸했다.
"선생님도 참. 짝꿍 대신 경쟁자만 남은 학교에서 평생 갈 친구라니요. 나중에 학창 시절 추억이란 걸 떠올리게 된다면, 오로지 내신 등급을 올리기 위해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는 것과 얍삽하게 생활기록부에 기재할 수 있는 활동만 골라서 했다는 찜찜한 기억뿐일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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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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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중간고사 후 이어지는 '자퇴행렬'... 딱 한 가지만 필요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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