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혹은 하루
노일영
우리는 마루에 걸터앉아 거의 1시간가량 얘기를 나눴는데, 대화는 이쪽이 야옹? 물으면 저쪽이 냐옹! 대답하고, 니아옹? 하면 이아옹! 하는 식이었다. 어르신은 우리 얘기가 신기한지 한 번도 끼어들지 않고 듣기만 했다.
'캣언니'를 만난 얘기를 꺼내자, 부산댁 언니는 앨리스에게 더는 사료를 안 줘도 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캣언니가 앨리스에게 직접 사료를 주기 때문이었다. 덧붙여서 부산댁 언니는 캣언니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누군지 안다고 말했다.
함양 바닥에서 냥이를 좀 모신다는 사람 치고, 그녀의 명성을 듣지 못한 사람은 없다는 거였다. 나는 전혀 알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역시 사람은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사방엔 은둔 고수가 수두룩하니까 말이다.
"언니, 나는 그 캣언니가 누군지도 모르는데요?"
"그니까, 너는 캣 타워에서만 살지 말고 영역을 좀 더 넓히라고."
부산댁 언니의 말에 따르면, 캣언니는 함양으로 오기 전에 창원에서 살았는데, 거기에서도 집사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했다고 한다. 창원에서 차에 치인 길냥이와 길멍이들의 병원비와 사료값으로 캣언니는 아파트 1채를 날렸다는 것이다.
길냥이·길멍이에게서 벗어나고자 함양으로 숨어든 지 4년, 하지만 현재 그녀가 사료를 조공하며 모시는 함양 냥이만 해도 200마리를 넘어설 거라는 부산댁 언니의 말이었다. 그런 캣언니에게 경쟁심을 느껴 이 구역의 미친 집사는 나라고 생각했다니, 내가 진짜 미친 생각을 했구나 싶었다.
"과속 방지 턱 꼭 부탁해요"
"이장님, 그러니까 여기 아래쪽은 경사가 너무 심해서 절대로 과속 방지 턱을 설치할 수 없습니다. 이건 아예 안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르신들이 가로수 밑에서 쉬는 터라 과속으로 달리는 차량 때문에 도로가 너무 위험하다고 설명했지만, 총무계장과 함께 온 군청 건설교통과 담당자는 허가가 날 수 없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더는 뭐라 할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과속 방지 턱 설치의 당위성에 대해 주장해야만 했다.
"여기서 로드킬 당한 고양이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어르신들이 죽은 고양이를 보면서 감정이입을 한다구요. 마치 자신이 로드킬을 당한 것처럼.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이 도로는 죽음을 의미하게 되고, 도로에 나오는 걸 두려워하다 보니, 마을 어르신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쇠약해지는 거라구요. 규정도 중요하지만, 어르신들의 건강도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총무계장과 군청 담당자는 한숨을 내쉬며 서로 쳐다봤다. 두 사람은 도로를 따라 아래에서 위로 발걸음을 옮겼고, 나도 그들의 뒤에서 천천히 걸었다. 마을 회관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회관 앞에는 부산댁 언니와 어르신 2명이 어두운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그러고는 두 공무원을 향해 한마디씩 던졌다.
"과속 방지 턱 꼭 좀 부탁해요."
"무서버가꼬 나댕기질 몬 한다꼬."
"내 죽기 전에, 그게 뭐라 캤노, 와 이래 기억이 안 나노. 머 거석(거시기, 그것) 쫌 해달라꼬."
연습한 내용보다는 훨씬 약한 발언이었다. 두 공무원은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세 사람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게 아닌데, 안 해주면 마을 앞에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농성에 들어간다고 연습해 놓고, 이게 뭐야.' 마을 회관 위쪽으로 걸어가던 군청 담당자가 약간은 밝아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장님, 여기 이쪽은 경사도가 거의 없어서, 이 지점에는 과속 방지 턱을 설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런데요?"
"그런데 여기 이 집 바로 앞에 턱을 설치하면, 밤에 쿵쿵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다시 걷어 가라고 민원을 넣을 게 뻔하거든요."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여기 이 집은 집사가 사는 곳이라···."
담당 공무원이 지목한 그곳은 서울댁 언니의 집 앞이었다. 따라서 민원이 들어갈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