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생애사진 100선1974년 12월 10일 김대중-이희호 부부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명동성당에서 열린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왜곡보도도 많았다.
함세웅이 이끌던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중앙정보부 요원들의 영장 없는 불법연행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한 신문은 "민주화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법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는 말이냐"고 비꼬았다. 대통령 부인 육영수가 사망한 후 몇몇 신문에 함세웅을 비롯한 사제 80여 명이 육영수를 추모하는 미사를 올린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그러나 함세웅은 미사를 부탁하는 요청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거절했으므로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시절부터 함세웅은 신문을 볼 때 조그만 기사부터 행간의 의미를 따져가며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석 3)
함세웅은 민주회복국민회의 시절 어느 정치인ㆍ언론인ㆍ법조인ㆍ문인에 못지 않는 역할을 하였다. '부수적'인 일도 있었다. 지도부에 함께 참여한 함석헌과 윤형중을 '화해'시키는 역할이다. '사상계 세대' 뿐만 아니라 한국 논쟁사에 고딕체로 기록되는, 1950년대 월간 <사상계>를 통한 '함석헌ㆍ윤형중 논쟁'의 당사자들이다.
<사상계> 1956년 1월호에 함석헌은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논설에서 한국기독교의 타락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에 윤형중 신부가 <함석헌 선생에게 할 말이 있다>는 반론을 펴고, 함석헌이 다시 <윤형중 신부에게는 할 말이 없다>는 재반론에 윤형중의 재반론이 이어지면서 논쟁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는 동안 <사상계>는 시중의 화제가 되고 공전의 판매부수를 기록하였으며, 함석헌과 윤형중은 논쟁사에 빠뜨릴 수 없는 주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함세웅의 증언이다.
가장 기뻤던 내용은…민주회복국민회의 할 때 명동성당에서 회합을 많이 했어요. 다른 데는 다 차단시키니까. 명동성당 윤형중 신부님 계신 숙소 화합실에서 대표회의를 많이 했습니다. 첫 모임 때 윤형중 신부님하고 함석헌 선생님이 만나셨는데, 이 분들이 과거에 유명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어요. 그 지면논쟁으로부터 한 십여 년이 지난 것 같은 데, 함석헌 선생님은 수염을 허옇게 기르셨고, 윤형중 신부님은 머리를 깎으셨어요. 함석헌 선생님이 한 살 위인데 두분이 그때 처음 만나신 거예요.
제가 소개해드렸어요.
"신부님, 함석헌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 윤형중 신부님이십니다." 하니 두 분이 껴안고 소년처럼 기쁘다고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윤형중 신부님과 함석헌 선생님은 민주화 과정을 통해 화해하신 거죠.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윤형중 신부님은 세상사를 많이 말씀 안 하시니까 뭐든지 결정되는 대로 하시라고 상징적으로 자리를 지켜주신 게 너무 고맙고요. (주석 4)
민주회복국민회의는 '재야'라는 한묶음으로 엮기에는 실로 다양한 면면들이었다. 개중에는 개성이 강하여 쉽게 의견의 합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때마다 함세웅은 마음고생을 하면서 이들을 '대변'하였다.
다만 한 가지, 기록할 내용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30대 시절 민주회복국민회의 대변인 할 때 정말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정치인, 종교인, 지성인을 두루 뵙게 되잖아요. 저보다 선배들인데 그때 가까이서 실체를 보면서 조금 놀란 부분들이 있어요. 구체적으로, 정치인 같은 경우에는 그날 중앙정보부에서 연행한다고 하면 모임에 안 와요. 뭘 어떻게 알았는지 안 오시는 거예요. 또 사진 찍을 때는 다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 그것을 보면서 조금 빨리 세상물정을 파악할 수 있었죠. (주석 5)
주석
3> 유시춘 외, <70, 80실록 민주화운동(1)>, 101쪽, 경향신문사, 2005.
4> <이 땅에 정의를>, 103쪽.
5> 앞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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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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