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마을에 들어선 영농 폐비닐 수거장
노일영
구조물 설치가 시작된 건 콘크리트 타설 후 1주일이 지나서였다. 오전에 작업이 시작될 때 공사를 맡은 업체의 사장과 잠깐 인사를 하고, 면사무소에 들러서 볼일을 다 보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사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던 홍 영감은 내가 등장하자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마을회관 쪽으로 사라졌다. 사장이 내게 말했다.
"아이고, 이장님은 참 좋으시겠어요."
"네?"
"마을에 저런 홍 회장님 같은 분이 계셔서 땅도 기부하게 만들고, 마을을 위해 여러 가지 좋은 일도 많이 하시니까, 이장 업무가 얼마나 편하겠어요."
"아, 네!"
민구 오빠가 부지를 기부했든 홍 영감이 자기 덕분이라고 소문을 내고 다니든, 어쨌든 영농 폐비닐 수거장이 드디어 마을에 생겼다. 수거장의 늠름한 모습을 찍은 사진을 마을 주민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앞으로는 농사에 사용된 비닐들을 꼭 폐비닐 수거장에 가져다 놓으라는 당부의 문자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자 셋의 '참전'
폐비닐 수거장 설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이가 또 로드킬을 당했다. 마을 앞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자동차에 부딪힌 고양이가 몇 마리나 죽어 나갔는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비가 조금 많이 오면 좁은 배수로 때문에 늘 물이 넘쳐나서 불안해하는 주민들을 위해 배수로 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일단은 도로에 과속 방지 턱 설치를 위해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 마을의 이름은 음천이다. 하지만 사실 음천과 내천 그리고 구천, 이렇게 세 곳의 거주지가 합쳐진 지명이다. 내가 사는 음천에서 내천까지의 거리는 거의 2.7km이고, 구천까지의 거리는 대략 3.5km이다. 내천과 구천은 음천보다 고지대에 자리 잡은 촌락들이라서, 읍에라도 나가려면 우리 마을 앞 내리막길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내천과 구천의 주민들이 우리 마을회관 앞의 이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너무 내는 것이다. 내가 이장이 되기 전에 서울댁·부산댁 언니와 함께 이 도로에 과속 방지 턱을 설치해 달라고 몇 번이나 전임 박 이장에게 건의하고 면사무소에도 3번 찾아갔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내가 8년 전에 귀농했을 때도 마을에는 주민들보다 고양이들이 더 많았다.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많은 냥이들이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서울댁 언니 한 사람의 헌신 때문이었다.
언니는 완벽한 집사이자 묘권 신장(猫權伸張)을 위해 노력하는 투사였다. 고양이 사료를 준다고 눈 흘기는 주민들을 향해 도끼눈을 뜨고 레이저 광선을 발사하는 바람에 언니는 머리채를 거머잡힌 적도 있었다.
내가 귀농했을 즈음에 언니는 이미 많이 지친 상태였다. 50마리를 훌쩍 넘어선 냥이들에게 식사와 간식을 바치는 것도 만만치 않았지만, 의지를 할 만한 집사 동맹군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댁 언니의 집사 연합군으로 곧바로 참전하고, 뒤이어 부산댁 언니가 우리 마을로 귀촌해서 지원병으로 입대한 덕분에, 냥이들은 그나마 제대로 된 집사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나보다 3년 먼저 귀촌한 서울댁 언니가 냥이들을 모실 수 있는 집사 시스템의 기반을 다져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산댁 언니와 내가 매달 사료값을 분담하고, 함께 주민들과 맞서 싸우면서 탈진해 있던 서울댁 언니는 자신의 본질을 서서히 되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모시는 '코리안 숏헤어' 중 흰색·갈색·검은색이 섞인 '삼색이'의 도도함이 서울댁 언니의 정체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