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묺화재 안내판산성과 도호부, 향교를 한 셋트로 붂은 문화재 표지판. 지난해부터 부쩍 많아 눈에 뜨인다.
이상구
차를 타고 계양을 지나다 보면 계양산성, 계양산성 박물관, 부평도호부청사, 부평향교 등을 한 세트로 묶은 표지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난해 5월 '계양산성박물관'이 문을 열면서부터였다. 결국 구는 계양산성과 도호부 청사, 향교 등의 문화유적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고, 계양산을 브랜딩하려는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읽힌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 중심에 있는 계양산은 구의 랜드마크일 뿐 아니라 인천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해발 395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저 흔한 동네 야산과는 격이 다르다. 일단 외형만으로도 그렇다. 작아도 산세가 힘차고 웅장하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도 있다. 모든 인천 시민들이 사랑한다. 계양구라는 도시 이름도 그 산에서 따 온 거다.
거기에 산성이 있었다. 무려 비류 백제 시대의 것이었다. 산성에 쓰인 벽돌처럼 일정한 모양을 한 자연석은 이미 오래전부터 종종 발견됐었다. 거기에 '동국여지지' 등에서는 계양산성의 존재를 역사적 사실로 기록하고 있었다. 이를 근거로 학계 등은 이를 규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고 관(官)이 이를 받아들였다. 20여 년 동안 10여 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많은 유적 유물들이 발견됐다. 목간, 토기, 수막새 등 종류도 형태도 다양했다. 계양산성의 역사는 허구가 아니었다. 구는 그렇게 찾아낸 소중한 보물들을 한자리에 모아 박물관을 지었다. 박물관 바로 위의 산성터도 깔끔하게 정비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박물관 개관에 즈음해 계양산성이 국가유적(사적 제556호)으로 지정되는 경사를 맞기도 했다.
호국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