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소하지만 배부르게 차린 추석상. 남편은 와인과 소주를 함께 준비해두었다.
김정아
릴리는 음식들을 보더니 깜짝 놀랐고,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그 모습을 보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취나물, 고사리나물은 캐나다에 온 이후로 처음 먹어본다고 했고, 깻잎전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 했다.
사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집밥을 먹게 해주는 것이 나의 제일 큰 목표였는데, 정말 음식 하나하나를 즐기며 집에서 먹는 맛이 난다고 해서 나를 기쁘게 해 줬다. 원래 내가 만든 음식은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상대방 입에 들어가는 게 더 맛있지 않은가!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추석 걱정을 하시길래, 이렇게 우리 집에 올 거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너무 기뻐하셨다는 이야기도 해주는데 듣는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부모님 마음이 어떨지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었다.
디저트까지 마치고 났는데, 급히 음식 준비하느라 만수산이 되어버린 부엌을 보면서, 릴리는 자기가 설거지를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하는데도, 세 번을 연거푸 묻길래, 생각해보니 같이 치우는 게 어쩌면 그녀도 마음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나란히 서서 부엌 정리를 했다.
이 생소한 모습에 남편은 어리둥절해하면서 막 웃었다. 원래 손님 초대 후 뒷정리는 늘 전부 간 후에 우리 부부의 몫이었는데, 마치 내 집 살림 인양, 정리를 적극적으로 돕는 그녀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것 같았다.
깨끗이 정리된 부엌을 보면서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그리고는, 종일 피곤하셨을 텐데 자기가 가야 우리가 쉴 수 있다며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오늘 상 차리고 남은 음식들을 이것저것 담고는 송편까지 챙겨서 가져가라 주었는데, 우리가 먹겠다고 냉장고에 쟁이는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요모조모 한다고는 했지만, 한국 차례음식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정도의 일로 이만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떠나는 그녀를 보내고 돌아서면서 남편이 껄껄 웃었다.
"딸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은 기분이네. 세상에! 자식이 다섯이라니!"
캐나다에 와서 보낸 세 번째 추석은 이제 정말 명절의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비록 한국의 가족들도 못 만나고, 미국에 있는 딸과도 못 만났지만, 가족 같은 이웃사촌들과 이렇게 보내는 것이야말로, 타국에서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추석이 아닐까? 한국에서도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고향에 못 가고 영상통화로 차례를 지내기도 했다는데 이 정도면 남부럽지 않게 한가위같이 보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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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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