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문고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동양학 전문 도서관이다. 도쿄도(東京都) 분쿄구(文京區)에 있다. 조지 모리슨 장서를 바탕으로 1924년 문을 열었다. 손진태는 도요문고에서 '사서'로 일했다. 후원을 해왔던 미쓰비시 재벌이 일본 패전 후 해체되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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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를 졸업한 손진태는 1930년부터 1934년까지 도요문고(東洋文庫, The Oriental Library)에서 일했다. 1939년 도요문고에서 발행한 <도요문고 15년사>는 손진태가 사서로 근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극소수 조선인이 사서로 근무한 점을 상기할 때, 손진태가 일본 도요문고 사서로 일한 것은 대단히 이채로운 경력이다. 도요문고 사서로 일하면서 그는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와 교류했다. 손진태가 마에마 교사쿠와 주고받은 편지가 지금도 남아 있다.
일본 동양사학의 태두로 불리는 시라토리 구라키치는, 오대산 사고에 보존된 <조선왕조실록>을 도쿄제국대학 도서관으로 옮긴 장본인이다. 1913년 여름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 총독을 만나, <조선왕조실록>의 도쿄 반출을 역설한 사람이 바로 시라토리다.
손진태가 도요문고 근무 당시 접한 수많은 자료는, 그의 연구 활동에 큰 도움을 준 걸로 보인다. 도요문고 시절 그가 정리한 민속학 관련 노트(13권)와 수십 묶음의 자료가 남아 있다. 도요문고 사서 경력은, 귀국 후 손진태가 학자와 도서관인으로 나래를 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손진태가 일한 도요문고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동양학 도서관이다. 일본 최대 동양학 도서관으로 꼽히는 도요문고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세계 5대 동양학 연구도서관'으로 꼽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백만 권을 자랑하는 도요문고 장서는, 양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우수해서 국보 5점, 중요문화재 7점을 보유하고 있다.
도요문고 장서의 40%는 한서(漢書)이고, 20%는 일본서, 30%는 서양서로 알려져 있다. 도요문고는 조선에서 수집한 장서도 꽤 소장하고 있다. 도요문고는 타이베이제국대학 총장을 지낸 시데하라 타이라(幣原坦)와 마에마 교사쿠가 수집한 조선본 장서를 상당수 소장하고 있다. 1942년 마에마는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수집한 854부 2,478책의 조선 고서를 도요문고에 기증했다.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도요문고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1917년 미쓰비시(三菱) 합자회사 대표였던 이와사키 히사야(岩崎久彌)는, 조지 어네스트 모리슨(George Ernest Morrison)이 수집한 장서 2만 4천 점을 3만 5천 파운드에 구입했다. <타임>(Time)지 특파원이었던 조지 모리슨은, 중국에 머무는 동안 각종 자료를 열정적으로 수집했다. '모리슨 장서'는 중국에 대한 각종 서적, 논문, 문서,
팸플릿으로 구성된 컬렉션이었다.
모리슨 장서 구입 과정에서 이와사키는 도쿄제국대학 문과대학장 우에다 가즈토시(上田萬年)와 동양사학 교수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자문을 받았다. 모리슨 장서를 바탕으로 이와사키는, 1924년 재단법인 형태로 도요문고를 발족시켰다.
조선민속학회와 진단학회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