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주째, 1주일에 한 번 4인 가족의 플라스틱 배출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최다혜
일단 플라스틱부터 줄여보기로 했다. 플라스틱은 썩지도 않은 채 지구 곳곳을 떠돌아 다닌다는 점도 문제지만, 생산과 유통, 폐기 단계에서 탄소를 배출한다는 점도 문제다. 플라스틱을 줄이면 미세 플라스틱과 탄소 배출물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
그렇게 나는 2020년 11월 23일부터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쉬웠다. 그저 1주일에 한 번씩, 우리 네 식구가 썼던 플라스틱(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을 씻고 말린 후, 사진 한 장으로 남겼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SNS에 사진을 공개하고, 글로 간단하게 기록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미약한 실천일 게 뻔하지만, 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만 같았다.
여태것 플라스틱 사진을 34주차까지 찍었다(7월 25일 기준). 쉽고, 보람도 있긴 한데... 솔직히 귀찮다. 그렇지만 그만 두기도 싫다. 해보니까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살림에 보탬이 된다. 플라스틱으로 된 물건을 사려니 지구를 망치는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어 소비가 줄었고, 자연스럽게 생활비도 줄었다(관련 기사:
'플라스틱 사진찍기 10주... 생활비가 줄었습니다' http://omn.kr/1rxtk).
생활비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갑자기 농사가 짓고 싶어졌다. 플라스틱 사진을 찍다보니,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식품 포장 용기였다. 방울 토마토 한 팩에도 플라스틱이 따라왔고, 애호박 하나마저 비닐랩으로 둘둘 말려있었다. 사진을 찍다보니 종종 플라스틱이나 비닐 포장 없이 풋고추도, 오이도, 쌈채소도 먹고 싶었다.
플라스틱 사진을 찍다가 농사를 짓게될 줄이야. 단순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플라스틱을 줄여보자는 다짐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데, 의욕이 하늘을 찔러 농사까지 지어버렸다. 사실 반쯤 정신나간 생각이었다. 농사가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우리 부부는 맞벌이다. 평일 내내 일하다가 쉬는 날에도 농삿일을 하자고? 그것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고?
과한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플라스틱이 눈에 밟혔다. 나는 더 할 수 있는 만큼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지구 날씨가 미쳐 돌아가는 만큼, 나도 올해는 미친척하고 안 하던 짓을 한 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친정 부모님께서 농사를 지으신다는 점이었다. 부모님께 밭 한 이랑을 빌려, 농사짓는 방법도 곁에서 배워갔다.
맞벌이라 힘든데 농사마저 판을 벌였으니 어쩌나 싶었지만, 의외로 농사는 재미있었다. 아마 농사가 생업이었다면 고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식구 먹을 만큼만 지을 때에는 농사도 여가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농사에 '원예치료'나 '흙멍'(흙을 보며 멍때리는 일)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금요일 퇴근길에 곧장 밭으로 달려가게 되었다. 그만큼 농사가 재밌었다. 힘들기는커녕 직장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플라스틱은 얼마만큼 줄었을까? 나름 성공적이었다. 플라스틱 '제로'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쓰레기가 줄었다. 똑같은 분리수거 통인데, 쓰레기 차는 속도가 줄어들어 2주에 한 번 쓰레기를 비울 때도 있다. 또 도시에서는 다 먹은 찜닭 일회용기는 쓰레기지만, 밭으로 가면 감자와 완두콩을 담을 다회용기가 된다. 농사를 짓다보니 일회용품도 재사용하게 됐다.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푸드 마일(food miles: 식품의 생산지에서부터 생산, 운송, 유통을 거쳐 소비자의 식탁에 이르기까지의 거리)이 줄어듦으로써 탄소 배출량도 줄었다. 밭에서 우리집까지 자동차로 30분 거리니, 푸드 마일이 아주 짧은 셈이다. GFN은 푸드 마일이 320km 정도면 지구에 무해하다고 판단한다. 사실 농사까지 짓지는 않더라도 국산 식료품을 먹으면 탄소 배출량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실천의 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