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 준비 현황도대체 뭘 어쩐다는 건지 감이 잘 안잡히는 듯한 어머니의 독서토론 직전 모습. 먹을 것과 책과 메모를 앞에 두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진순
달걀, 토마토, 떡, 차 등이 탁자에 놓였다. 그리고 <엄마는 죽을 때 무슨 색 옷을 입고 싶어?>라는 오렌지색 책과 사회자인 내가 준비한 메모 종이들도. 어머니와 내가 인생 처음 '독서토론'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차려진 자리다.
토론 참여자 둘 모두 책을 완독하였다. 독서토론을 하자는 내 말에 어머니는 내용 다 잊어버렸는데 어떻게 하냐고, 한 번 더 읽어야 기억날 것 같으니 다시 읽고 나서 하겠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읽어가멍 다 잊어부럼서(잊어버리네)"라는 말을 종종 했다. 내가 책 내용을 간단히 말하고 나서 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거니까 잊어버려도 하고 싶은 말 하면 된다며 토론을 시작했다. 6장까지 내용을 둘로 나눠서 5월 말과 6월 초 두 번에 걸쳐 토론회가 열렸다.
내가 우선 책 내용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나서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식으로 진행했다. 약 10여 년간 약하게 치매를 앓아 오신 할머니, 그 할머니의 자녀 중 장녀로 돌봄의 대표 역할을 맡아온 어머니, 그리고 저자가 책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노인들이 익숙한 삶의 장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어머니는 평생 익숙하게 살아오신 담양 시골집에 계속 혼자 사시면서 광주에 사는 자녀들이 주 3~4회 방문하는 방식으로 돌봐왔다.
책 내용과 맞물려 우리 가족들이 했던 고민 이야기들도 이어졌다. 어머니가 누구와 어디에서 살 것인가에 대해 자식들이 고민했던 과정, 육지에 있는 언니네에 나와 어머니가 같이 살 집을 짓고 살면 어떨까 상상해보던 시간, 그런데 이 책의 이야기처럼 너무 낯선 곳에 어머니가 가시면 힘들지 않을까 싶어 결국은 이렇게 여기에서 어머니랑 내가 같이 살게 된 현실까지.
어머니는 육지에서 살았어도 딸들과 같이 있으니 괜찮았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런데, 다니던 교회와 센터를 그대로 다닐 수 있어서 지금이 더 좋다고 덧붙이며 밝게 웃으셨다.
다음으로 책 속 할머니의 치매 증세가 심해지는 단계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책 내용에 따르면, 골절로 입원해서 깁스를 하는 등 불편하고 낯선 환경이 되자 할머니의 치매 증세가 갑자기 심해졌다. 욕설, 밥상 엎기, 여기가 어디냐, 집에 가서 개밥 줘야 한다며 소리 지르기 등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민폐를 끼쳤다.
간병인이 돌볼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 저자의 어머니가 할머니의 병원 간병을 하였다. 두 달 간의 입원 그리고 퇴원 후 할머니의 집에서 4개월, 총 6개월간 24시간 간호를 하던 저자의 엄마는 동생에게 잠시 어머니 간호를 맡기고 딸네 집으로 3박4일 간의 휴가 여행을 떠났다. 그 휴가기간 모녀가 나눈 이야기들이 이 책의 주 내용이다.
할머니의 간병이 당시 가족의 핵심 이슈였던지라 모녀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늙음과 죽음에 초점이 맞춰졌다. 저자의 어머니는 산소호흡기나 심폐소생술 같은 생명연장술에 대해서 단호하게 거부하셨다. 산소호흡기는 꼽기는 쉬워도 도로 빼기는 어렵다며, 그걸 꼽고 있으면 자신이 뭔가를 표현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채로 그대로 누워있어야만 한다며, 그렇게 죽어가고 싶지는 않음을 명확히 밝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