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대지회 요리사 앞치마연대자가 제작해준 신라대지회 앞치마
배성민
직책이 있는 간부들뿐만 아니라 개별 조합원들 또한 다양한 역할이 나뉘어있다. 신라대지회 여성 조합원들은 누구누구의 엄마,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불리지 않는다. 지회장님, 총무님, 조직부장님, 이름 등으로 호명된다.
"노조 활동 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저를 부를 때 'OO이 엄마' 혹은 '아줌마'라고 불렀어요. 근데 여기서 간부가 되면 직책을 부르게 되고 그렇치 않을 때도 서로 각자의 이름을 불러요. 노조 활동을 통해 저는 누군가 존재 뒤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현실이 되었습니다."
신라대지회 조합원들은 50~60대 여자가 일하는 것에 대해 인정받지 못한 시대를 살았다. 여자는 집에서 가족 식사를 챙기고 아이를 돌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조합원들은 가부장적 가정에서 생활하다가 집을 나와 농성을 하게 되자 가족들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투쟁한다고 바빠서 집안일에 소홀해졌는데, 부채감보다 일탈감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남편과 자식들 식사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됐어요. 가족들 위해서 농성 접고 집에 들어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죠.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 밥을 하지 않는 게 이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고요. 가족들이 알아서 밥만 챙겨 먹는다면 남은 인생은 밥 안 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신라대지회 조합원들은 농성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가족에게 지지받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에 남편과 많이 싸웠어요.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 내가 청소, 빨래, 요리 등 다 책임지고 하고 있다는 걸 깨닫더라고요. 그래서 투쟁 꼭 이겨서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오히려 투쟁을 응원하더라고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음식이나 투쟁 물품을 후원하기도 했어요."
정현실 지회장 남편은 집에서 부인이 투쟁가에 맞춰 팔뚝질을 하는 모습 보고 처음에는 놀랐지만, 익숙해지자 농성장 걱정되면 빨리 가보라고 집을 비우는 것을 오히려 부추긴다고 한다.
집단해고에 맞서 싸우는 신라대 청소노동자의 투쟁은 노동자 권리 회복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가부장제를 넘어서고 있는 주요한 싸움이다.
"우리는 페미니즘이나 노동운동은 잘 몰라요. 노조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을 뿐입니다. 그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시작했는데 우리가 몰랐던 세계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여자들만 집안일 하는 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자가 바쁘면 남자도 집안일 해야 하는 거죠. 노조를 통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알게 되었다면 투쟁을 통해서 성평등한 삶을 살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