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촌해방전선 1주년 기념으로 친구가 선물해준 그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2019년 초, 역촌해방전선이 결성된 건 돈이 없어서였고 외로워서였다. 다들 혈연가족에서의 독립을 꿈꿨지만, 혼자 살기는 원하지 않았다. 자취하며 외로워하던 사람도, 우리와 만나고 돌아가는 길 눈물이 난다던 사람도, 우리가 더 가까이 매일을 보내며 서로의 삶을 살필 수 있다면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함께 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르길 좋아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내가 상근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나는 단체에서 만들었던 청소년 잡지의 편집위원이었다. 나이는 각각 다르지만 10대 후반부터 20대까지를 함께 한 친구들이었다.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편집위원으로서의 활동만을 함께 했기 때문은 아니다. 더 많은 시간을 놀고,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고민하고, 서로의 불안을 함께 보듬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우리가 공유하던 중요한 가치는 누구에게나 안정적인 관계망이 필요하다는 것. 이게 우리가 가족을 만들 수 있었던 출발점이다. 공동체적 지향을 가지고, 관계를 이야기해 온 수많은 시간들.
그래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관계지 딱히 '가족'에 집착하는 건 아니었다. 그 이름이야 식구여도 좋고 친구여도 좋지만, 너무 당연하게 우리의 관계를 한시적이고 가볍게 이해하는 시선들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우리가 원한 건 경제적 이유로 공간을 공유할 뿐인 셰어하우스, 하우스메이트가 아니었다. 기존의 세계가 지정해 둔 자리로서의 가족, 혈연을 기반으로 한 역할과 의무로서의 가족이 아닌 새로운 가족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가족은 이 집 구성원을 넘어 가까운 친구들이기도 했다.
우리의 명명은 가족이라는 것이 애정으로 이뤄지는 거라면 우리는 왜 아닌 거며, 함께 사는 사람들인 거라면 왜 우리가 가족일 수 없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혈연관계, 연인관계가 아니더라도 충분한 애정을 기반으로 생활을 함께하는 우리의 관계는 왜 가족에는 미치지 못하는 관계로 여겨져야 하는가. 정말 '건강'하다고 말하는 구성과 조건의 가족이 우리보다 더 행복하긴 한 건지.
가족이지만 가족이 아닙니다
처음 집을 구하러 다니며 곧바로 우리의 관계는 '비정상' 취급을 받았다. 처음 계약을 하려던 집에서 거절당한 이유는 우리가 20대 여성 둘과 남성 둘로 이뤄진 소위 '정상가족'의 범위에 들지 않은 구성이기 때문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에게 그 소식을 전하던 열성적인 젊은 공인중개사는 우리만큼이나 실망하며 다른 집을 알아보겠다고 했고, 다음부터는 구성원을 숨기거나 사촌이라고 주장해보라는 조언도 했다.
다행히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 이사를 하던 날, 이삿짐센터 분들과 이런저런 가구를 설치하러 오신 분들은 처음에 의아했는지 우리 집이 쉐어하우스, 에어비앤비 등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의 전제를 깔며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웃었다. 아, 정말 이 세계의 '표준'과 '정상'의 기준은 여전히 공고하구나.
얼마 전 새벽에 복통을 느끼는 사람을 응급실로 데려가던 날,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이게 당장 수술로 이어져야 하면 나는 뭘 할 수가 있지? 의식을 잃어버린다면 이 사람의 정보 하나 내가 조회할 수 있나? 접수처에서 관계를 물을 때 동거인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의 위치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기준에서 벗어난 삶의 형태로 충분할 수 없을까
처음 함께 살던 무렵, 누군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난 너희랑 최소 10년 보고 들어온 건데?" 입대를 앞둔 식구가 돌아올 때까지 이 집에서 우리는 너를 기다리겠노라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이 관계에 만족하며 꽤나 다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가끔은 부딪히고, 가끔은 혼자 있기도 하고, 그럼에도 함께 웃고 온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아이를 낳고 싶다는 나에게 그럼 이 집에서 함께 키우는 미래를 이야기하며 웃는 가족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계획하고 고민할 때면 가족제도 안에 포함되지 않는 우리에게 닥치는 현실적 조건들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족'에게 주어지는 자격과 사회적 지원이나 제도를 활용할 수 없는 상황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하나하나 기준에 포함시켜 우리를 공인받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혈연/결혼'이 아닌 형태의 삶 역시 가족제도 바깥에서도 충분히 괜찮은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세상일 순 없는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탈학교 청소년, 대학 비진학자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언제나 그런 세상을 바라곤 했다. 사람들은 으레 그럴 것이라는 듯 학년을 묻고 학과를 묻고 대학 이름을 물어왔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기준에 맞지 않은 내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불이익이 가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교육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강사비가 낮게 책정되는 것도 당연하고, 중졸로 끝나는 학력이 나에 대한 선입견과 실제적 차별로 드러나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너는 자유를 선택했으니 그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들은 그것이 차별이 아닌 정당한 대가라는 생각을 담고 있었다. 그런 불이익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대학에 가고, 학교를 다녔으면 되는 거라고. 바깥의 존재도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오히려 기준 안의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회와 제도가 요구하는 정상/비정상의 기준을 의심할 수 없다면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삶에 대한 차별은 정당화되어버린다. 그래서 그 기준 안에 포섭되는 것만이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인 양 여겨진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는 누구라도 그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는 순간 차별받아 마땅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렇게 차별의 근거를 스스로에게 돌려야 하는 세상은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나는, 우리 가족은 그런 세상에 삶의 형태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 질문의 한 형태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누구나 더 다양한 삶의 형태를 선택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 나도 말하고 싶다, 겪었던 이야기!
방법1. 자신의 SNS에 해시태그(#차별금지법_나도필요해)와 함께 경험 적기
방법2. 구글 설문지에 경험 적기! https://forms.gle/HVaSZUqgABSgUxqW7
[#차별금지법_나도필요해] 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 10만행동>을 목표로 각자의 차별경험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바로가기 https://bit.ly/equality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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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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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 남자 둘... 그래도 우린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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