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 있던 옛 서울대 도서관경성제국대학은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세운 유일한 대학이다. 조선인의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막기 위해, 일제가 여섯 번째 제국대학으로 개교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로 이어졌다. 동숭동 대학로에 있던 옛 서울대학교 도서관은,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으로 지은 건물이었다.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철거되었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1946년 국립 서울대학교 출범과 함께, 김진섭은 독문학 교수직에 임용되었다. 동시에 그는 도서관장이 되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초대 관장'이 된 것이다. 서울대학교 출범 전 '경성대학' 시절 도서관장은 학산(鶴山) 이인영(李仁榮)이다.
국립 서울대학교가 초대 도서관장으로 김진섭을 발탁한 이유는 뭘까? 그가 식민지 조선의 유일한 대학도서관에서 '가장 오래 일한 조선인'이기 때문이다. 김진섭은 햇수로 13년 동안 경성제대 도서관에서 일했다.
김진섭이 도서관장으로 일한 기간이 길진 않았다. 1946년 10월부터 1947년 5월까지 재직했으니, 그의 관장 재임 기간은 7개월에 불과하다. 기간은 짧지만 새롭게 출범한 국립 서울대학교 초대 도서관장을 맡은 의미가 적진 않다.
해방 직후부터 1년 동안 '경성제국대학'은 '경성대학'을 거쳐 '국립 서울대학교'로 바뀌었다. 학교 이름의 변화만큼 도서관도 혼란의 시기가 이어졌다. 국립 서울대학교 반대 투쟁이 벌어진 이 시기, 도서관 내부에서도 김구경 부관장과 대립으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도서관 장서가 도난 또는 분실되기도 했다.
김진섭이 도서관장에서 물러난 후, 서울대 도서관은 김구경 부관장이 관장 대리를 맡았고, 2대 이병도(1947년 10월 - 1952년 9월)와 3대 정광현(1952년 9월 - 1962년 5월) 관장 체제가 이어졌다.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을 거쳐, 국립 서울대학교 초대 관장이 된 김진섭은 책과 독서에 대해 일가견을 가졌을 법하다. '책'에 대한 그의 생각을 살펴보자.
"책의 가치는 간단히 말하면 책 속에 기록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 있으며, 그리하여 그때그때에 그 책을 펴기만 하면 우리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반응되어 나온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중략) 이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책이라 하는 이 귀중한 상속품은 세대로부터 세대로 물려오고 상속되어온 까닭으로 오늘날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것 같은 인간 지식의 총화(總和), 총결산에 대한 귀중한 기록물로서 도서는 우리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납북된 '한국 도서관의 3대 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