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묘려 앞쪽에 가마우찌들이 집단 서식하는 일명 모자섬의 모습.
조우성
관동묘려(寬洞墓廬)는 조선중기의 문신 쌍청당(雙淸堂) 송유(宋愉, 1389~1446)의 어머니 고흥 유씨 부인이 문종 2년(1452) 82세로 별세하자 이곳에 장례를 지내고 그 옆에 만든 재실이다. 고종 31년(1894년)에 중수했다고 한다. 1994년 6월에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7호로 지정됐다.
우암 송시열이 효종 8년(1651년) 51세 때 지은 유씨부인 묘갈문에 의하면 부인은 1371년에 출생했고, 부친 준(濬)은 고려의 상서(尙書)를, 조부 방(坊)은 판관을 지냈다. 은진 송씨의 명망가였던 송명의(宋明誼)의 아들인 송극기(宋克己)와 결혼했으나 22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게 됐다. 친정부모는 당시 풍습을 따라 개가시키려 하였으나 부인은 이를 거부하고 4살 먹은 어린 아들인 송유(宋愉)를 등에 업고 500리길을 걸어 회덕(현 대전시)에 있는 시댁을 찾아 갔다고 한다.
그러나 시부모조차 "여자가 부모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삼종지의를 모르는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자, 류씨부인이 3일 동안 울면서 "삼종지의가 등에 업힌 아이에게 있지 않습니까"라고 하소연 하자 시부모가 크게 감동해 며느리를 다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후 부인은 시부모를 모시며 아들과 손자들을 훌륭히 키워냈고, 1452년 8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백여 년이 지난 효종 4년(1653년)에 나라에서 부인에게 정려(旌閭)를 하사했다고 한다.
관동묘려(대전시 동구 냉천로152번길 291)는 주차시설이 잘 돼 있고, 조금 좁지만 가는 길도 잘 정비돼 있어 접근성이 좋은 곳이다. 건물 위쪽에서 바라 보는 대청호 풍경도 멋지고, 건물 우측에 맛집으로 알려진 은골할먼네 식당(042-274-7107, 010-6428-6836)도 있어 한번 찾아 볼만 한 곳이다. 은골할먼네 식당은 야외테이블에서 식사도 가능한데, 코로나로 인해 영업을 하지 않는 날도 있으니 식사를 하고 싶다면 미리 전화로 확인을 하고 방문하면 좋겠다.
관동묘려의 사진포인트는 성행교 다리위에서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적송이다. 여기서 인물 사진을 담으면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있겠다. 또 관동묘려 바로 앞쪽에 가마우찌가 집단 서식하는 조그만 섬이 있는데, 일명 모자섬이라 불린다. 이곳이 사진포인트다. 섬도 재미있게 생겼지만 새들의 배설물로 인해 소나무가 죽어 하얀 눈으로 뒤덮인 듯 보이기도 하는데, 조금은 묘한 느낌을 주는 섬이다.
관동묘려에서 미륵원까지 차도를 걸어 산책하다 보면 중간 중간에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호숫가로 내려가는 길들도 보인다. 호숫가로 내려가는 길이 조금 가팔라서 위험한 곳도 있으니 만일 호숫가로 내려가고 싶다면 상당히 조심할 필요가 있겠다. 당국에서 일반인들이 편안하게 내려갈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해서 길을 정비하고 푯말을 세워주면 좋을 것 같다.
기자와 함께 미륵원과 관동묘려, 관동묘려에서 미륵원에 이르는 차도와 호숫가를 함께 걸은 예술공연단체 '비상지악무'의 이수현 단장은 "미륵원은 충청도의 후덕한 인심이 잘 표현된 훌륭하고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관동묘려는 후손들이 큰 일을 한 남성이나 정승 판서들을 기리는 건물이 아니고 여자인 부인 유씨를 받드는 재실이라는 것에 놀랐다. 훌륭한 선조밑에 훌륭한 자손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청호는 물도 너무 맑고, 주변 경관도 아름답고,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곳인 것 같다. 힐링하기 더 없이 좋은 장소다. 글 쓰는 사람은 글이 절로 나올 것 같고,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가 절로 나올 것 같고, 악기하는 사람은 악기 한자락 타고 싶어 할 것 같다. 자주 오고 싶은 곳이다"라고 처음 와 본 대청호의 느낌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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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은 노래가 절로 나올 것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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