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공개문서에 나온 정부의 훈령 중 '단일팀 회담에 임하는 우선 순위'. 1. 아국 단독 출전 2. 쌍방 불출전 3. 개별팀 출전 4. 북괴 단독 출전 5. 단일팀 구성 순으로 되어 있다. 단일팀이 맨 마지막에 있다. 외교부, 1963c, 188쪽
외교부 공개 문서
북한은 선수 선발 문제에 있어 예선 경기 장소와 시기, 그리고 올림픽 참가 행정 문제에 관해서 많은 대안을 갖고 회담에 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보고서에 따르면 남한 대표단이 '권한이 없다느니 준비가 안 되었다느니' 하며 회의를 미루거나 거부한 사례가 여러 군데 나타난다. 실제 5월 14일 추가로 KOC에 전달된 남한 정부의 훈령을 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1. 회담은 가급적 결열을 피한다. 결열 시에는 결열 책임이 우리에게 있지 않도록 할 것. 이러한 사태가 일어날 때에는 사전에 정부에 보고할 것.
2. 따라서 결열을 피하고 가급적 지연책을 쓰되 합의되지 않는 점은 다음 회의에서 토의토록하여 지연하여 갈 것.
3. 상대방이 무리한 주장을 할 때는 즉시 이를 정부에 보고케 할 것
대표적인 예가 예선전 장소 문제다. DPRKOC는 국내가 아니면 제3국에서 하자고 계속 제안했다. KOC가 장소문제는 권한 밖이라며 다음으로 미루자고 하여 이 문제만 3일을 토의했다는 것은 남한 정부의 훈령에 의한 회담 지연작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회담장의 분위기와 내용을 실은 기사가 로동신문에 실렸다(로동신문, 1963.5.29.). 남한 대표단은 이것을 문제 삼으며 북한이 KOC를 비방했다고 하고, 북한 대표단은 먼저 KOC의 비방 성명이 문제였다고 받아치며 회담이 중단되기도 했다.
DPRKOC는 보고서 마지막에 홍콩 회담의 모든 절차를 공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반드시 덧붙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홍콩회담의 진실을 한국 국민과 세계 스포츠인들에게 알리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고, 홍콩회의 나흘째 KOC의 이효 부위원장의 비방 성명에 비추어 볼 때, 그는 회담 진행 과정을 왜곡된 그림으로 보여주는 성명을 발표했기에 공개 절차는 더욱 정당하다."
- Brundage, Film 77-11, 146-155.
결국 두 NOC는 선수 선발 원칙에만 합의하고 나머지는 IOC와 협의하거나 다음 회의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하고 회담을 끝냈다.
[2차 홍콩 회담 1963. 7. 26] 회담도 못 해보고 결렬
IOC와 남북 NOC는 1차 홍콩 회담에서 결정하지 못한 단일팀 관련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2차 홍콩 회담을 추진하는데 합의했다. 1963년 7월 26일 오전 10시에 개최하기로 한 회담은 오전에 회담이 취소되고 오후에 KOC의 결렬 선언으로 끝이 났다.
KOC가 DPRKOC에 문제 삼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 김기수 단장의 귀국 보고가 허위와 KOC 비방이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2차 홍콩회담 도착 성명에서 김기수가 'National Union'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회담을 두 국가의 연합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북한이 이 회담을 정치적 선전장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2차 홍콩회담이 끝나고 남북 NOC는 IOC에 회담 보고서를 보낸다. 이 보고서의 내용과 남한 정부 외교부 문서를 비교해 보면 KOC와 DPRKOC가 왜 회담도 시작하지 못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바로 남한 정부가 KOC에 전달한 훈령 때문이다. 1차와 마찬가지로 2차 홍콩회담 전에 남한 정부는 KOC에 다음과 같은 훈령을 전달했다.
1. 기본 훈령
가. 단일팀 구성을 위한 성의를 표면상 과시하면서 북괴의 저의를 파악 이를 분쇄하여 아측 단독 출전의 계기를 마련하도록 회담을 유도할 것.
나. 북괴는 모든 것을 양보하고 단일팀 구성을 획책할 것을 고려하여 언제던지(든지) 결열시킬 수 있는 보다 난제를 제시할 수 있도록 만반 준비를 가출(갖출) 것.
2. 세부 지침
가. 본 회담에 들어가기 전에 북괴 김기수의 귀한 보고의 허위성을 지적하고 공개 사과가 있기 전에는 회담을 거부하겠다고 강조할 것. 불응 시에는 결열시키고 그 이유로서 김기수의 허위 보고를 대내외에 공개할 것. 만일 이에 응하여 공개 사과를 하였을 때에는 김기수를 대표에서 빼도록 주장하여 볼 것
나. 호칭 문제는 전한 단일팀으로 일관 주장할 것
위 훈령에 따라서 KOC는 2차 홍콩회담에 임했으며 김기수의 도착 성명 마지막 문단에 있는 'National Union'이란 표현을 이유로 내부적으로 '회담 결렬'로 방향을 정한다. 그러고는 실제 회담 당일 김기수의 귀국 허위 보고에 대한 DPRKOC의 공식 사과와 대표단 교체를 주장하며 2차 홍콩회담을 일방적으로 결렬시켰다. KOC의 일부 대표단은 떠나고 DPRKOC는 계속 남아서 KOC에 회담 재개를 계속해서 요구했지만 더 이상의 회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로써 IOC는 남북 NOC 자체적으로 단일팀 구성 회담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IOC 중재 하에 다시 회담을 하기로 한다.
[2차 로잔회담 1963. 8. 19] IOC 위원장의 실망
8월 19일 로잔에서 열린 네 번째 회담에는 IOC가 직접 나섰다. IOC는 '단일팀 구성에 관한 제안서'를 만들고 회담에 임하는 원칙을 자세히 정리해 남북 NOC에 전달했다. 1차 로잔 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IOC의 중재로 남북 NOC 대표자들이 모여 2차 로잔 회담을 이어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KOC 대표는 회담 전날 미리 브런디지를 만나 회담 사안에 대해 결정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회담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전하고 다음날 떠났다. 이로써 2차 로잔 회담은 KOC의 불참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19일 당일 IOC와 DPRKOC가 만났다. 이 자리에서 브런디지는 남한의 불참에 대해 개탄했으며 DPRKOC에 환영 인사를 했다. 그리고 KOC가 8월 31일까지 단일팀 구성 회담 여부를 알려주겠다고 했으니 좀 더 기다려줄 것을 북측 대표단에 요청했다. 김기수는 이러한 상황과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
이후 KOC는 단일팀 회담 재연기를 요청했으나 브런디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KOC의 이효는 브런디지에게 회담 결렬의 책임은 북한 대표단에 있다며 IOC의 질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오토마이어와 브런디지는 회담 결렬의 책임은 KOC에 있으며 10월 IOC 총회에서 북한 팀을 승인하는 것에 대한 책임도 KOC에 있음을 분명히 지적했다.
그 후 1963년 10월 19일 제60차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DPRKOC는 독립팀인 North Korea NOC로 승인을 받는다. 이것이 DPRKOC가 IOC로부터 두 번째로 받은 승인이었다.
결국 남북 NOC는 네 번의 단일팀 구성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KOC가 의도적으로 회담을 결렬시킴으로써 북한의 NOC는 독립팀으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