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 국가 공식 데이터를 욕심내는 사람들이 있다. 대형 사교육업체, 그리고 지역사회의 이해가 닿아 있는 일부 국회의원, 그리고 순수한 열정 차원에서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려는 사람이다. 아마도 전국 단위에 가장 신뢰할만한 성적 데이터는 세계 여러 나라를 뒤져도 수능 데이터를 갖고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능가할만한 곳이 없을 것이다. 그곳의 정보를 다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과연 고3 담임교사는 이런 전국 데이터를 수집하고 열정을 쏟아 붓는 것이 맞을까? 세간의 사람들은 교사가 책을 쓴다든지, EBS에 출연해 강의를 한다든지 하면 훌륭하고 멋진 선생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주 커다란 오해이다. 방송에 나오는 쇼닥터가 명의가 아니듯, 책 쓰고 인터넷 강의에 얼굴 비친다고 모두 훌륭한 교사인 것은 아니다. 훌륭한 교사란 교실에서 학생을 만나는 교사이지 방송 출연하는 교사가 아니다. 교사가 방송 출연하는 걸 나쁘다고 보는 건 아니다. 이런 겉보기식 평가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입시도 이런 겉보기식 평가가 만연한 곳이다. 솔직히 말해 내 자식이 서울대 갈 실력에서 한참 먼데, 고등학교 선택에서 서울대 합격생 배출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한정된 학교 자원이 서울대 배출을 위하여 특정 학생에게 몰린다면, 그게 전교 수위권을 달리는 학생에게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성적이 그 정도 되지 않는 학생에게는 오히려 큰 손해가 된다.
문제는 이런 정보마저 왜곡이 심하다는 것이다.
코미디
입시 정보와 관련해서 아주 코미디 같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자사고 폐지에 앞장서던 교육감이 특정 고교가 의대 입시에 편중되었다면서 공개적으로 그 학교 의대 합격자 수치를 밝힌 것이다.
"360명 졸업생 중에 275명이 의대에 갔다."
교육감은 학교 교육의 파행을 말한 것인데, 팩트가 틀렸다는 비판이 흘러 나왔다. 아무래도 과장된 숫자임이 분명했다. 여기서 밝혀진 이면의 팩트 하나. 바로 교육감도 자신의 행정 지휘 감독 아래에 있는 고등학교의 입시 결과를 잘 모른다는 것.
해당 학교에서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실제로는 210명 정도이고 재학생보다는 재수, 삼수생이 더 많다는 것. 그리고 그나마도 이중, 삼중 중복 합격생이 많다면서 과장된 수치이며, 순수 의대만이 아니고 한의대와 치대 등도 포함한 숫자로 진실은 훨씬 더 적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혼자서 배꼽잡고 그 기사를 볼 수밖에 없었다. 언제는 그 과장된 수치로 사람들이 오해를 하게 홍보하더니, 그 숫자가 여론 시장에서 불리할 것 같으니깐 팩트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 학교가 의대 진학 희망자들에게 꽤 인기가 있다는 건 사교육 업계에서 이미 들은 바 있었다. 그 누구도 그 학교의 실제 진학 실적을 도통 알 수가 없었는데, 예기치 않은 정치적 공방으로 인하여 진실의 일단이 드러나 버렸던 것이다.
그럼 도대체 교육감이 언급한 의대 입학생 숫자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어디긴 어디겠나. 바로 학교에서 자기네 입시 실적 자랑하면서 붙인 홍보물에서 나온 것이다. 홍보할 때는 최대한 늘리고, 불리할 때는 최소한으로 줄이는 법칙이 여기라고 다를 리 없다. 마치 동창회에서 자랑할 때 연봉과 세금 내는 거 투덜거릴 때 남는 거 없다고 하면서 산정하는 금액이 다른 거랑 똑같은 이치이다.
교육감의 팩트 체크는 바로 그 고등학교에 나온 자료에 근거한 것이었고, 그걸 또 팩트 체크라는 이름으로 그 학교 관계자가 반박하였으니, 보고 있는 교사 입장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과연 우리 근처에 있는 평범한 고등학교라고 다를까?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명문 대학 합격자 수를 홍보하지만, 20년 간 고등학교에서 근무한 나도 숫자만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많다. 내부자가 되지 않는 이상 숫자 이면에서 알려주고 있는 교육 실태를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숫자들은 진실의 일면만을 보여준다. 가끔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큰 진실을 보는 것에 유리할 때도 많다. 이런 오해를 줄이기 위하여 늘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하지만, 우리는 욕망이란 너무 큰 진실 가리개를 하나씩 쓰고 있다. 입시가 그런 걸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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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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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합격자 수 OO명"... 당신이 잘 모르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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