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통지표 배부일인 2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해성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능 성적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수능 성적표가 배포된 지난 23일, 인터넷 포털 메인에 수능 만점자 관련 뉴스가 종일 걸렸다. 해당 학생과 출신 학교 등 신상 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공개됐다. 코로나 확진자 폭증과 검찰총장 징계, 장관 후보자 청문회 등 굵직한 이슈 사이에서 검색어 순위 1, 2위를 다퉜다.
올해 수능은 외국 언론사들도 취재할 만큼 중요한 사건이긴 했다. 이 와중에 수십만 명이 밀폐된 공간에 한데 모여 동시에 시험을 치르는 나라는 우리뿐이어서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대입 시험을 비롯한 모든 국가 주관 시험을 대부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그런데, 수능 끝난 뒤 학교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으레 수능 다음 날 교실은 아이들이 화풀이하듯 참고서와 문제집을 찢어가며 요란한 책거리를 하는 게 연례행사였다. 한편, 가채점 결과를 놓고 아이들끼리 환희와 탄식이 교차하는 등 적잖은 후유증을 앓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없어서일까. 수능 직후 고3은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됐다. 지난 5월 20일 등교 개학이 결정된 이후 고3은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단 한 번도 원격수업으로 전환된 적이 없다. 학교의 '주인'인 고3을 위해 고1, 고2 후배들은 등교를 양보해야만 했다.
수능이 끝났으니 고3은 방을 뺐고, 고1과 고2는 격일제로 부족한 등교 수업의 일수를 채우고 있다. 참고로, 올해 학사 일정의 최대 피해자인 고1은, 학교마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까지 등교 개학 일수가 채 80일이 못 된다. 그나마 시험 기간을 빼면 두 달 남짓에 불과하다.
수능이 끝났는데, 이런 분위기는 처음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의 경우, 그나마 확진자가 적은 지역에 있는 데다 고등학교라서 사정이 나은 편이다. 최근 3차 확산이 일어나기 전까지 고등학교의 경우엔 전체의 2/3까지 등교가 허용됐다. 중학교는 상황이 매우 심각해서, 올해 입학한 중1은 '초등학교 7학년'일 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섣부르지만, 등교 수업이 턱없이 적었던 탓이다. 올해 유난히 고1 아이들의 모나고 불성실한 생활 태도가 교사들 사이에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1년이 다 지났는데도 학급 내 교우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수업 시간 학습 태도 역시 엉망이라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들이 2년 뒤 치르게 될 2023학년도 수능은 안 봐도 비디오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문제의 난이도를 조정해야 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교실 수업보다 원격수업에 익숙한 세대인 만큼, 수능도 원격으로 치르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린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질 뻔했다. 수능 성적까지 나왔는데도 학교는 여전히 차분하다. 예년 같으면 누가 '대박'을 쳤네, 누구는 수능 최저를 맞추지 못했네, 나아가 만점자가 몇 명 나왔네 하며 교무실이 시끌벅적했을 텐데, 묻기는커녕 궁금해하는 이들조차 드물다.
수능이 관심사에서 순간 멀어져 버린 느낌이다. 고3 아이들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학교로 배달된 수능 성적표를 먼저 뜯어보고 호들갑을 떤 건 늘 교사들이었다. '학교의 명예를 빛낼' 최상위권 아이들의 성적은 순식간에 공유되었고 종일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학교는 누구의 이름이 교문 위 현수막에 내걸릴지 가늠해보는 시간이었다. 학벌을 조장한다며 교육청으로부터 금지 명령이 내려졌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여전히 명문고의 근거로 삼는 뿌리 깊은 관행이다. 수능 만점자가 나왔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와중에 아이들 수능 성적에 일희일비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예년과 달리 학교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고 했더니, 한 동료 교사가 심드렁하게 이렇게 대꾸했다. 확진자가 폭증하며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안전 안내 문자가 울려대는 엄중한 상황에서 그깟 수능이 대수냐는 거다. 아이들 역시 들뜬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다.
도리어 몇몇 아이들은 지금 대학에 가도 문제없느냐는 엉뚱한 질문을 한다. 올해처럼 강의가 죄다 원격수업으로 대체될 거라면, 굳이 그 비싼 등록금을 내고 일반 대학에 다닐 이유가 있느냐는 뜻이다. 차라리 입학과 동시에 휴학하거나 재수하는 게 낫겠다는 거다.
'등록금만 먹는 하마'로 전락한 대학
작년에 수능을 치른 20학번 아이들이 이따금 학교를 찾아와 대학 생활 1년을 통째로 날렸다고 하소연한다. 아무것도 배운 게 없고, 경험한 게 없고, 사귄 친구와 선배도 없다며, 자신들을 '3무 세대'라고 부른단다. 한 아이는 '저주받은 20학번'이라며 자학하기도 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대학의 구내식당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한 아이는 유튜브가 대학이고, 교수는 유튜버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럴 바에야 군대부터 다녀와야겠다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에게 군대는 '끌려가는 곳'이 아니라 이 와중에 잠시 쉬어갈 피난처다.
서둘러 백신이 보급된다 해도 일러야 내년 말은 되어야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때까지 학교에서 대면 수업을 진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 21학번 역시 '3무 세대'(취업 기회, 스펙 쌓기, 인적 네트워크 구축)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이야기다.
대학생으로 한 해를 보낸 아이들은 이구동성 코로나로 사실상 교육 자체가 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단언했다. 그런데도 대학은 오히려 '손 안 대고 코 푸는' 혜택을 누렸다고 말했다. '대학은 기업이고 학생은 고객'이라는 말이 조롱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는 걸 이참에 깨닫게 됐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