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순감옥에 수감 중인 안중근 의사 모습
눈빛출판사
한 출판인의 제의
2008년 이른 봄,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가 승용차에다 안중근 의사 관련 도서 및 참고자료를 한 박스 싣고 안흥 내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2009년 10월 26일은 안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일이요, 다음해 3월 26일은 순국100주년이니, 그때를 맞춰 나에게 안중근 평전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얼떨결에 승낙하고는 이 대표가 두고간 여러 자료들을 두루 살폈다. 그 문헌들을 보면서 역사학자도 아닌 내가 안중근 의사의 평전을 쓰기에는 부담이 갔다. 1909년 10월 16일, 68세의 이토 히로부미는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조선에 이어 드넓은 만주조차도 삼키고 싶은 야욕으로 일본 모즈 항을 떠났다. 그는 중국 다롄 항으로 상륙하여, 뤼순을 거쳐 10월 25일 창춘에서 밤 열차를 타고 북만주 하얼빈으로 달렸다.
같은 시기 30세의 청년 안중근은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문을 듣고 당신 손으로 처단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그런 뒤 1909년 10월 21일, 브라우닝 권총을 가슴에 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 행 열차에 올랐다. 마주 보고 달리는 두 열차는 서로 피할 수 없는 단선이었다. 그들은 끝내 하얼빈에서 일대 충돌하여 두 사람 모두 당신 나라를 위해 장렬히 산화한 생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이런 두 인물의 장렬한 마지막 행장을 강원 오지 산골에서 자료만 뒤척이며 그린다면 이미 출판된 책들의 또 하나 아류작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평전 대신에 나만 쓸 수 있는 형식의 역사 현장답사기로 방향을 바꿨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우선 현실적으로 갈 수 없는 안중근의 고향인 북한지역은 제외하더라도 연해주 일대와 다롄, 뤼순도 나는 그제까지 미처 가보지 못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