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천 고광순 의병장 순절비가 있는 지리산 연곡사
박도
호남 항일의병 유적지를 답사하다
중국대륙 여기저기 흩어진 항일운동 유적지 기사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여러 독자들에게 알려졌다. 거기다가 '항일유적답사기'가 책으로 출판되자, 특히 독립운동가 후손 분들이 여기저기서 불렀다.
그래서 나는 백범기념관도, 우당기념관도 방문했고, 왕산 후손들도 만났다. 아울러 호남의 여러 항일의병 후손도 만났고, 그 어른들의 안내로 호남의병 전적지도 답사케 되었다. 그리하여 2007년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8개월 동안 본격으로 일곱 차례에 걸쳐 호남 의병전적지 답사에 나섰다.
전라남북도 구석구석 항일의병 전적지를 찾고, 그 후손들은 만나 100년 전 호남 벌에 휘날린 창의의 깃발에 매우 감동하면서 붓을 마음껏 휘둘렀다. 이 길에는 의병선양회 조세현 부회장, 고광순 의병장 후손 고영준 선생, 오성술 의병장 후손 오용진 선생, 전해산 의병장 후손 전영복 선생 등이 자청으로 길 안내를 했다.
그리하여 전남 창평 녹천 고광순 의병장의 전적지 지리산 연곡사부터 시작하여 장님 의병장 백낙구, 기산도, 머슴 출신 안규홍, 나주의 김태원·김율 부자 의병장, 오성술, 양진녀·양상기 의병장, 심남일, 김용구·김기봉 부자 의병장, 매천 황현, 기삼연, 조경환, 김원국·김원범 형제 의병장, 화순 쌍산의소의 양회일 의병장 전적지를 더듬었다. 그런 뒤 전북 임실의 이석용, 정읍의 임병찬, 남원의 전해산 의병장에 이어 마무리로 충남 청양 모덕사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유적지 등을 답사했다.
그동안 정부나 언론으로부터 외면당한 호남 의병 후손들은 초라한 한 경상도 출신의 문사를 쌍수로 반겨줬다. 더욱이 호남의병 전적지를 영남사람이, 그것도 경북 구미 출신이라고 하자 현지인들은 더욱 놀라면서 반겼다. 한 선비(화순 양동하 전 능주 전교)가 내게 한 말씀이다.
"경상도 금오산 선비가 호남에 오시다니 참 귀한 손이오. 예전에는 영호남 간에 틈이 없었지라우."
나는 그 흔한 승용차도 없이 가방에 노트북, 스캐너, 녹음기, 카메라 등을 잔뜩 넣은 채 끌고 다녔다. 호남인들은 그런 나를 두 손 들어 환영하면서 그 지방의 산해진미로 대접했다. 호남 의병 답사 길을 떠날 때마다 아내가 한마디씩 잔소리했다.
"제발 많이 먹지 마세요."
그때 의병운동사 대가 순천대 홍영기 교수가 자문해줬다. 나의 호남의병유적지 답사기 '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는 2007년 10월 24일부터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시작하여 이듬해 5월 13일 56회로 마무리됐다. 그런 다음 그해 8월 눈빛출판사에서 같은 제목의 단행본을 발간했다.
그 책이 나가자 당시 김양 보훈처장이 격려 편지와 함께 도서 200권을 주문해 주었다. 저자로서는 가장 고마운 일이다. 호남은 '의향(義鄕)'이요, '예향(藝鄕)'이며, '미향(味鄕)'이었다. 나는 8개월 동안 전라남북도 곳곳을 일곱 차례나 누비면서 따뜻한 호남인의 인정과 그 맛깔스러운 음식을 만끽했다.
나는 한 작가로, 한 교육자로 망국적인 지역 감정의 골을 붓으로 메우고자 온 정성을 다했다. 그 열정이 그분들에게 전달됐는지, 답사 이후에도 수시로 호남 의병 후손들은 당신 고장으로 초대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때마다 호남의 빼어난 산수와 감칠 맛나는 음식에 흠뻑 빠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