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은파호수공원고려시대 때 만든 저수지였던 은파. 사람 사는 동네와 맞붙어 있다. 시민들은 사시사철 산책한다.
군산시
11월은 '잘해보자'는 마음을 먹기에 알맞은 계절이었다. 맑고 차가워서 나른하지 않았다. 한낮에 잠깐 따스해진 햇볕이 어깨와 등을 감싸면 살아가는 기쁨을 느꼈다. 마침 '군산 한 달 살기'를 하러 온 서울 시민 권나윤씨도 곁에 있었다. 둘이서 임피역, 이영춘 가옥, 청암산, 군산공항, 미군기지, 월명공원, 선유도, 옥구저수지, 은파호수공원 등을 돌아다녔다.
놀 때는 결심하지 않고도 바로 뛰어들 수 있지만, 일할 때는 본궤도로 진입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내일 시험 보는데도 난데없이 필통과 가방을 정리하고, 책꽂이의 각을 맞추던 학생 시절처럼 나는 글 쓰는 일에 빠지지 못 했다. 한 달 동안 쓴 글은 은파호수공원과 키티의상실. 글을 읽은 책임편집자님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
"작가님,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는 인문지리서입니다. 여행서가 아닙니다. 작가님이 전달하려는 분위기와 느낌들은 잘 전달되지만, 문단 사이의 연결에서 역사적인 설명이나 취재한 내용을 조금 더 추가해 주세요. 그래야 독자들이 작가님의 의도를 매끄럽게 따라가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키티의상실'처럼 스토리가 있는 가게 이야기는 좋습니다."
에세이, 인터뷰 글, 여행기, 동화 등을 써온 게 헛된 일은 아니었다. 인문지리서는 처음이었지만 편집자님이 하는 말을 재깍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썼던 글하고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다시 충실하게 목차를 들여다보고, 취재를 하고, 군산에 관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혼자서 답사를 다녔다. 그 사이에 해가 바뀌었다.
'삼선 슬리퍼 파워'로 써내려간 원고
속도는 여전히 느렸다. 한 달에 세 편씩밖에 쓰지 못했다. 중간원고는 3월 31일, 최종원고는 7월 31일까지 보내야 하는데, 초조했다. 수십 번씩 가본 곳이라고 해도 조금씩 변해가니까 다시 확인하러 가야 했다. 나포 십자뜰의 가창오리 군무는 오로지 겨울에만 볼 수 있으니까 당장 가야 했다. 뭉그적거릴 시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