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대 윤보선 대통령
국가기록원
제5대 대통령 선거
1963년 10월 15일. 이날은 제5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그때 나는 고교 2학년생으로 홀로 서울에 남아 신문배달을 했다. 매일 새벽 3시 50분쯤 깨어나 옷을 갈아입고, 4시 통금 해제 사이렌을 기다렸다가 그 소리가 들리면 용수철처럼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길로 광화문에 있는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로 뛰어갔다. 거기 도착하면 새벽 4시 20분 전후였다. 보급소 총무는 막 본사 수송차가 내려놓은 조간 신문뭉치에서 배달할 신문을 재빨리 세어줬다.
나는 그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담당 구역인 사직동으로 달려갔다. 250여 독자 집에 배달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오전 6시 30분 전후였다. 곧장 세수를 하고 아침식사 후 책가방을 챙겨 수송동에 있었던 학교로 갔다.
그날 학교 수업을 마치면 책가방을 들고 곧장 보급소로 갔다. 오후 4시 무렵이면 역시 본사 수송차가 윤전기에 막 쏟아진, 잉크냄새가 폴폴 나는 석간 신문을 보급소 앞에다 떨어뜨리고 갔다(당시 <동아일보>는 조간과 석간을 모두 발행했다).
그때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는 본사와 가까운 종로구 청진동의 한 한옥을 쓰고 있었다. 지금 광화문 SK 서린빌딩 앞 르메이에르 오피스텔 자리였다. 그런데 중요사건이 있는 날이거나, 대통령 선거전으로 대도시 유세가 있는 날은 석간 신문발행 시각이 평소보다 늦었다.
그런 날은 보급소 총무의 인솔로 배달원들은 <동아일보> 본사로 갔다. 거기 윤전기가 돌아가는 창구에서 막 쏟아지는 신문뭉치를 어깨에 지고 보급소로 날랐다. 그런 뒤 자기몫을 챙겨 배달 구역으로 달음질쳤다.
당시에는 소셜미디어 같은 뉴스매체가 없었다. 그래서 시민들은 하루에 두 번 발간하는 조·석간 신문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일을 파악했다. 신문 구독률과 인기는 최고였다. 특히 <동아일보>의 구독률과 인기는 대단했다.
신문을 애독했던 독자들은 배달시각이면 아예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신문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배달하고자 경쟁이 치열했다. 배달원들은 신문만 옆구리에 끼면 시내버스처럼 독자 집을 일일이 찾아 뛰어다니면서 신문을 대문 틈으로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