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김향기씨는 '아이와 함께 하는 매순간이 감동'이라고 말했다가난하고 불우했던 어린시절을 보내고, 미혼모 보호시설과 자립관에서 우울증을 겪었던 김향기씨는 절망에 빠진 순간마다 아이가 자신을 위로했다고 말했다.
정현주
그때 그는 '햇볕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2년 전,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동사무소에서 나온 사회복지사의 안내로 인천도시공사에서 하는 임대주택에 서류를 갖추어 입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금 사는 빌라 5층으로 이사를 왔다. 그러나 최소한의 가구나 가전제품을 마련하는 것도 버거웠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의 방을 꾸며주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인천 한부모가족지원센터'의 '아이방 꾸미기 지원 사업'의 도움으로 그 꿈도 이루어졌다.
"누군가가 말한 '고난 속에 축복이 있다'는 말이 와닿지 않았어요. '고난 속에 왜 축복이 있지? 고난이 있는데, 그게 왜 축복이야?' 이렇게 생각했는데, 고난을 계속 겪으면서 포기하지 않고 붙드니까 정말로 축복이 나타나는 거예요. 길이 보이고요. 축복은 사람을 통해서 오더라고요."
향기씨는 살면서 죽고 싶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생활고나 처지를 비관해 자살한 사람들의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했다.
"찾아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는 게 아니거든요. 몰라서 그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엄마는 나를 고등학교 대신 공장에 보냈다"
그는 보호시설과 자립관에 있으면서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그러면서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고등학교도 다녔다. 향기씨는 24살까지 중졸 학력이었다.
그가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서 부모는 이혼했고, 향기씨는 할머니 집과 아빠 집, 엄마 집을 떠돌면서 자랐다. 부모는 각자 재혼했고, 재혼한 배우자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있었다. 가난하기만 했던 게 아니라 가정의 온기마저 없는 곳에서 군식구처럼 살다 보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도 버거웠다.
중학교 때는 낳아준 엄마와 살았다. 당시 엄마는 상업고등학교에 못 들어갈 거면 아예 진학을 포기하라며 향기씨를 공장에 취직시켰다. 엄마가 '꼴통 학교'라 부르는 곳이라도 다니고 싶었지만 향기씨의 의견은 무시됐다. 공장에 다니는 동안에도 엄마는 툭하면 향기씨를 보일러실에 가두고 벌을 줬다.
그렇게 4년이 흘러 스무 살이 되었다. 남들처럼 고등학교도 못 가고 공장에 다니는 것도 서러운데, 엄마가 자신의 월급을 저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 그는 당시 살던 부산 집을 나와 무작정 인천으로 왔다. 수중에는 그동안 푼푼이 모은 돈 백만 원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인천의 한 고시원에 머물며 공장에 다니다가 남자친구를 만났다.
"제가 부모님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인지 아프면 약 사주고, 박카스 사주는 그 사람의 친절이 사랑인 줄 알았던 거죠."
그렇게 한 사람만을 바라보던 향기씨가 임신 사실을 전했을 때, 그는 자기가 아기 아빠라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알콩아, 달콩아 미안해. 내가 너를 보내려고 했어."
향기씨는 낙태할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무섭고 불쌍해서 그냥 낳기로 했다. 그러나 계속 눈물이 나왔다. 결국 입양기관에서 하는 미혼모 시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두렵고 우울해서 매일 울며 지냈다. 그때 그는 아기를 양육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입양 보내더라도 아기가 배 속에 있는 동안은 태교를 하기로 했다. 동화책도 읽어주고 배도 쓰다듬어 줬다. 길을 건너면서도 아기와 대화를 했다. 빨강 신호등을 보며 "신호등이 빨간색이야. 무서운 내 마음처럼 빨개"라고 말하고, 초록불로 바뀌면 "초록색이야. 그래도 너와 내가 살아 있다는 희망 같아"라고 말해줬다. 밥을 먹을 때도 "오늘의 반찬은 두부야. 저 하얀 두부를 먹고 너도 부드러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같은 말들을 속삭였다. 날이 갈수록 아기도 그의 말에 태동으로 응답했다.
향기씨는 점점 더 많은 얘기를 들려줬다.
"너의 태명은 알콩 달콩이야. 알콩달콩아, 오늘은 어땠니?"
그렇게 임신기간이 지나고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를 낳고 복지사 선생님이 '기를 거예요, 입양 보낼 거예요?'라고 묻는데, 향기씨는 자기도 모르게 기를 거라는 대답을 했다. 아기를 안아보는데 예뻐서 눈물이 막 나왔다.
"알콩달콩아, 미안해. 내가 너를 보내려고 했어."
병실에 있는데 자꾸만 아기가 보고 싶었다. 하얀 피부에 동그란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