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이 양손에 진압봉을 받쳐들고 시위군중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5.18 기념재단
박충훈을 내세워 허당한 담화문을 발표케 하고, 전두환은 막후에서 엄청난 음모를 진행하고 있었다.
22일 신라호텔에 중앙언론사 경영진을 불러 "군이 광주외곽을 포위하고 고립화함으로써 목포 등지에서 유입 인원을 차단하고 있고 광주비행장에 무전 연락실을 설치하여 현지 상황을 수시 보고받고 있다"고 설명하고, 협박성 발언을 늘어 놓았다.
그리고 나서 "광주 시내 철물상회가 주요 약탈대상이 되고 있다"면서 "폭도들이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합세를 강요하고 통반장을 협박" 한다거나 혹은 "있는 놈 때려잡자"는 구호까지 등장했다는 등 광주 현지 사정과는 질적으로 동떨어진 '유언비어'를 언급했다.
전두환은 한걸음 더 나아가 "공수단 복장 괴한이 10대 트럭에 분승하여 무등산으로 올라가며 '드디어 호남군인들 일어나 경상도 군인 죽이려 궐기했다'고 선동하면서 이들이 해안을 통해 월북 기도할 가능성이 있어 해군이 해상봉쇄 중" 이라고 말했다.
특히 "무장폭도가 광주교도소를 공격 중"이라거나 "무전 감청 결과 동혁당 지령으로 '교도소 폭파시켜라'는 내용이 계속 타전"되고 있다며 왜곡된 정보를 언론기관장들에게 흘렸다. 또한 "김대중 깡패 조직 4개파가 현지 데모에 합세"하여 활동 중이라고 주장했다.
전두환은 "군이 시가전 각오한 일대 작전을 준비 중"인데 "작전할 경우 2시간 내 진압할 자신 있다. 군은 결심한 이상 물러설 수 없다"면서 '24일'을 기해 광주 시가전을 각오하고 대작전을 펴겠다며 유혈진압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전두환은 언론사 간부, 경영진에게 "(광주사태에 임용자) 동조 내지 묵인하는 행동을 한다면 일찍이 보지 못할 조치를 취할 각오가 돼 있다"고 협박했다. (주석 11)
전두환이 오만방자하게 다시 유혈사태를 공언하면서 대규모 병력을 광주에 투입하는 전략을 세우는 데는 미국의 책임이 컸다. 22일 낮(워싱턴 시간) 국무성의 호딩카터 대변인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은 한국의 남쪽에 위치한 광주에서 발생한 민간인 투쟁에 대하여 깊이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태와 관련되는 모든 당사자에게 최대한의 자제와 대화를 통해서 평화적인 사태수습 방안을 모색하도록 촉구하는 바이다. 불안사태가 계속되어 폭력사태가 가열된다면 외부세력이 위태로운 오판을 할 위험성이 있다.
평온이 되찾아지면 우리는 모든 당사자들이 최규하 대통령이 밝힌대로 정치발전 일정을 다시 시작하는 길을 찾도록 촉구할 것이다. 미국정부는 현재의 한국사태를 이용하려는 어떠한 외부의 기도에 대해서도 미국은 한ㆍ미 상호 방위조약 의무에 의거, 강력히 대처할 것임을 강조하는 바이다.
이같은 성명을 발표한 몇 시간 후 미국은 백악관에서 고위정책조정회의(PRC)를 열어 한국사태에 대한 종합대책을 검토했다. 이 회의는 머스키 국무장관 주재 아래, 브레진스키 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 브라운국방장관, 터어CIA 국장, 훌부르크 국무성태평양 및 동남아시아 담당차관보, '아마코스트' 국무성 아시아ㆍ태평양 담당부차관보, 플래트 국방성 아시아ㆍ태평양 담당부찬관보 등 한반도 정책결정에 관련 있는 미행정부의 주요 관리들이 참석, 약 1시간 15분 동안 계속되었다. (주석 12)
미국 관리들은 회의 결과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필리핀 수빅만에 정박 중이던 항공모함 코넬시호와 E3A조기경보통제기 2대를 한국해역으로 급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