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와 중동.
구글 지도
반미운동의 상징적 인물 중 하나였던 카다피는 핵개발 포기와 함께 친미 노선을 본격화한 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로 인해 그의 최후가 마치 리비아 모델 때문인 것처럼 오해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그런 오해는 꽤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북한 역시 리비아 모델에 대해 불길한 인식을 갖고 있다. 카다피의 최후를 리비아 모델과 연관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한테서도 나타난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전에 그는 "리비아 모델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 생각하는 모델이 전혀 아니다"라는 말로 북한을 안심시키려 했다.
워싱턴 시각으로 이번 9월 11일 백악관에서 있었던 기자들과의 문답에서도 트럼프는 그런 인식을 표출했다. 존 볼턴 안보보좌관의 경질에 대한 질문을 받은 트럼프는 "그는 김정은에게 리비아 모델을 이야기하며 매우 큰 실수를 저질렀다"며 "카다피에게 일어난 일을 보라"고 말했다. 존 볼턴의 리비아 모델 언급을 '큰 재앙'으로 칭한 트럼프는 "카다피에게 일어난 일을 보라"고 재차 언급했다. 이런 일련의 발언들을 통해 트럼프는 김정은의 신변을 위협하는 리비아 모델을 추구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카다피의 최후와 리비아 모델을 연결하는 인식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의 힘 겨루기 상황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보인 반응에서도 나타난다. 펜스는 카다피의 최후를 연상시키며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뒤 "리비아 모델이 그렇게 끝난 것처럼 김정은도 제대로 협상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또 2018년 5월 25일 자 YTN '김선영의 NEWS 나이트'에 따르면, 니콜라스 번스 전 국무차관도 리비아 모델을 그런 뜻으로 사용하면서 "리비아식 해법은 무아마르 카다피의 죽음, 카다피 정권의 몰락을 말하기 때문에 북한은 이를 당연히 경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다피는 핵개발 포기 때문에 몰락한 게 아니다
반미국가가 핵개발을 먼저 포기한 뒤 미국이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리비아 모델은, 양국 사이에 신뢰관계가 없을 경우에는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과 미국처럼 70년간 적대관계를 이어온 국가 간에는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리비아 모델은 북미관계에 적용하거나 추천할 만한 방식이 못 된다.
그런데 카다피의 몰락 원인을 리비아 모델에서 찾는 것은 그다지 타당치 않다. 왜냐하면 그의 몰락을 초래한 본질적 요인이 핵개발 포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란 한자로 표현되는 이 말처럼, 리비아 모델과 카다피의 운명은 외형상으로는 상호 연관되는 듯해도 본질적으로는 연관성이 적은 사안이다.
물론 인과관계가 조금도 없는 것은 아니다. 카다피가 핵개발에 성공했다면, 재스민혁명 당시 미국이 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와 함께 리비아를 폭격하기가 훨씬 더 힘들었을 수도 있다. 핵무기가 없기 때문에 미국이 만만히 본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은 리비아 반군을 편들면서 사태에 개입했지만, 미국의 개입은 엄밀히 말하면 반군한테도 유리하지 않았다. 미국의 폭격은 반정부 시위대에도 타격을 줬다. 재스민 혁명 당시인 2011년 3월 책갈피가 발행한 <마르크스 21> 제9호에 실린 김하영의 논문 '리비아 혁명, 어떻게 볼 것인가?'에 이런 설명이 있다.
"다국적군은 정부군과 저항세력 간 격전지인 벵가지에도 폭격을 퍼부었다. 저항세력에 대한 카다피 군의 공격도 계속되고 있어, 리비아 민중은 양쪽에서 학살당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