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은 은퇴를 "맡은 바 직책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서 한가로이 지냄"으로 정의한다.
unsplash
국어사전은 은퇴를 "맡은 바 직책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서 한가로이 지냄"으로 정의한다. 여기에는 사회적 해석만 담겼다. 아무런 소속된 곳도 없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상태. 노인들이 자조하듯이 내뱉는 '뒷방 노인' 같은 느낌도 든다.
퇴직의 사전적 뜻은 "현직에서 물러남"이다. 경제신문이나 금융 정보 사이트에서는 경제적 해석까지 포함해 정의한다. "생산 활동은 중지했지만, 지속해서 소비는 하는" 상태. 한마디로 돈은 벌지 않으면서 돈은 계속 써야 하는 상태라는 거다. 즉, 아직은 몸의 활력도, 시간도 넘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은퇴의 사전적 의미를 잘 살펴보면 비은퇴자의 시각과 편견이 묻어나 있다. 생산 활동에서도 떠났고 경제 활동도 하지 못하는 상태. 그래서 50대 남성들이 은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길 꺼렸는지도 모른다. 머지않은 미래에 은퇴를 고민해야 하는 그들이니까. 은퇴하게 되면 아무 쓸모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은퇴와 퇴직 두 단어의 뜻과 차이를 되새겨 보면서 지난 연재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인터뷰하고 메모한 자료도 읽어 보았다. 거기에서 내가 은퇴와 퇴직을 혼동해서 쓴 배경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만나본 직장인들, 대기업에 다니든 중소기업이나 벤처회사에 다니든 입으로는 퇴직을 고민하면서도 머리로는 은퇴 이후를 걱정하고 있던 거였다.
왜들 그랬을까. 대화와 메모로 유추해 보니 우리 나이가 그렇게 작용했다. 숫자만 보면 분명 은퇴할 나이가 아니지만, 퇴직이 본의 아니게 은퇴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존재했다. 얼마 전 그런 감정을 직접 겪고 있는 남성을 만났다.
A(54세)는 유명 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해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20년 넘게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가 약 1년 전 회사를 나왔다. 목돈 들어갈 일이 생겨서 퇴직금 때문에 퇴사를 결심했다.
"언젠가 퇴사를 하겠거니 생각해 왔지만 별다른 계획도 없이 퇴사하게 됐네요."
그는 처음 한 달은 쉬면서 계획도 세우고 했으나 현실은 달랐다고 한다. 지인 회사나 협력회사의 문도 두드렸으나 그를 반기는 곳은 없었다. 그러다 거의 1년이 지났고, 지난달 내게 연락을 했다. 내게 헤드헌터로 일하는 지인이 있다는 게 기억났다면서.
"50대는커녕 40대를 찾는 데도 없어요."
헤드헌터 지인의 말이다. 물론 그의 고객 회사가 주로 외국계거나 벤처여서 IT 부문, 그것도 젊은 경력자 위주로 뽑는다고는 한다. 50대 중견 관리자나 임원을 뽑는 곳은 드물고, 그런 자리는 헤드헌터가 아닌 다른 경로로 뽑는다는 것이다.
이륙을 위한 착륙
A를 지난주에 다시 만났다. 재취업은 여전히 되지 않았다. 계속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재취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개인사업이나 자영업을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활력이 너무 떨어져 보였다. 거듭되는 재취업 실패에 기가 죽은 듯했다. 취업의 방편으로 장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존심도 상하고 의지도 안 생기는 모양이었다.
"이러다, 저러다, 아무것도 못 하고 늙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에게서 잘 날아가던 비행기가 갑자기 속도를 늦추고, 고도를 낮추고, 착륙을 시도하는 모습이 연상됐다. 준비 안 된 퇴직이 그에게 속도를 늦추게 하고, 고도를 낮추게 하고, 착륙하라고 밀어낸 거였다. 그가 만약 대비했다면 달라졌을까.
50대, 머지않은 미래에 퇴직해야 하는 그들 고민의 한 단면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마치 계획된 항로를 다 마치지 못하고 연료가 가득한 채로 중간에 착륙해야 하는 비행기 같다고나 할까. 공항 사정으로, 항로 사정으로 다시 날아오르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공포가 느껴졌다.
같은 입장이 된다면 누구라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더 날 수 있는데 착륙해야 하고, 다시 이륙하지도 못하는 쓸모없는 비행기가 되어버린 그런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