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선보인 작업과 퍼포먼스를 펼친 권지안(솔비) 작가
MAP크루
그는 활동하면서 늘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시청률을 보증한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PD들은 솔비를 캐스팅하려고 안달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지. 그만큼 악플로 '태클'을 거는 이들도 많았다. 작가로 활동하는 지금도 마찬가지. "유명세를 등에 업고 예술을 한다", "수천만 원에 거래되는 게 실화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불편한 상황조차 그는 이렇게 받아넘겼다.
"다른 연예인은 모르겠어요. 적어도 저는 미술과 반대편에서 활동했잖아요. 사람들은 저를 웃기는 사람으로 기억해요. 어떤 이는 '뇌순녀'(뇌가 순수한 여자)라고도 해요. (웃음) 가벼운 존재로 기억하는 거죠. 하지만 누가 가벼운 사람의 작품을 소장하고 싶겠어요? 작품을 거래하는 분은 '솔비는 제로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 마이너스에서 시작했다'고 말해요. 그런데 단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제가 많이 알려진 사람이니까 다른 작가보다 제 작업을 소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어느 정도 가격이 있는 작품을 단지 연예인이기 때문에 소장한다고 보진 않아요. 사람과의 교감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지난 6월 12일 발매한 디지털 싱글 음반 <하이퍼리즘 바이올렛>(Hyperism Violet)과 인사동에서 막을 내린 전시 <Real Reality; 불편한 진실>의 공통점은 '아픔'이다. 그동안 음악과 미술을 통해서 그가 받았던 상처가 치유됐는지 궁금했다.
"당연하죠. 선물처럼,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선물이라 느낄 만큼 이 마음이 소중하죠. 과거의 저처럼 힘든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 자체로도 치유가 됐다고 생각해요. 주관적 자아에서 객관적 자아로 바뀐 게 아닐까요?"
작업실 한편에 놓인 메모장엔 작가 권지안제공에 대한 소개가 적혀 있다. 전시장을 찾아온 관람객에게 자신의 작품을 소개한 글로 보이는데, 왜 미술에 발을 들여놨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말이다.
"저에게 미술은 삶을 포기하려던 순간에 다시 살 수 있도록 도와준 하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받은 이 선물을 나누고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이젠 제 개인의 치유만이 아니라 세상의 치유를 위해 미술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오는 10월 5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2019 라 뉘 블랑쉬 파리>(La nuit blanche, 백야)에 전시 작가로 초대됐다. 인터뷰가 진행되기 며칠 전인 6월 24일, 전시 위원회로부터 최종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2002년부터 시작된 <라 뉘 블랑쉬 파리>는 매년 10월 첫 번째 주말, 단 하루 동안 파리가 미술관으로 바뀌는 축제이다. 매해 200만 명의 관객이 찾으며 회화,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파리에서 진행된 이후 브뤼셀, 시카고, 마드리드, 로마, 텔아비브, 몬트리올, 상파울로, 토론토, 리즈, 상하이로 이어진다. '현대미술의 장'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아트 축제이다.
여기서 그는 <바이올렛> 퍼포먼스와 전시 작품을 선보인다. 축제에 초대된 30명의 작가들 가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세계적인 행사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는 소감을 물었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미술가 30명이 모이는 국제적인 축제잖아요. 경연은 아니지만 대표주자로 참여한다는 마음이에요. 베스트 3 안에는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웃음)"
"제 소망은 좋은 어른이 되는 것"
그는 가정과 아이들에 관심이 높다. 가정위탁 홍보대사로 활동했으며, 2017년에는 실종 아동을 찾는 '파인드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했고, 6년째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이 개최한 '제1회 마음이 그리기 대회'에 일일 미술 교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유독 아이들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과 연결시켰다.
"어렸을 때 느꼈던 외로움에 아직 묻혀 있는 거 같아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는데 저희 집은 모든 것을 밀어줄 만한 형편이 아니었거든요. 지금도 당시의 아픔을 가진 아이의 기억에 멈춰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을 보면 최대한 아픔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죠. 그걸 스스로 지켜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이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거든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을 거예요. 제 소망은 좋은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