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생가(단테 박물관) 실제 단테 생가는 아니다. 1865년 단테 탄생 600주년을 기념해 피렌체 시정부가 복원했고, 1965년 단테 탄생 700주년을 맞아 리모델링해 단테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박기철
신곡에서 단테는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데 자신이 평소 흠모했던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는다. 그런데 신곡은 가톨릭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이교도인 베르길리우스는 지옥에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단테의 안내자가 될 수 있었을까?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단테는 림보(Limbo)라는 개념을 차용한다.
림보는 태어나자마자 죽어 세례를 받을 기회조차 없었던 순수한 영혼, 즉 갓난 아기들이 가는 곳이다. 이 아기들은 죄를 지을 기회 자체가 없었지만 세례를 받지 못해서 원죄 때문에 지옥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이런 가혹한 처사에 어느 부모가 동의하겠는가? 이는 '모든 인간의 구원을 바란다'는 신의 의지에도 어긋난다. 그래서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들은 지옥이 아니라 림보로 간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비롯해 고대 철학자들이 림보에 있는 것으로 설정했다. 예수가 이 땅에 오기 전에 태어나서 신앙을 받아들일 기회가 없었을 뿐, 그들은 누구보다 순수한 영혼들이기 때문이다. 단테는 이런 식으로 고대 철학자들과 가톨릭 교리 사이의 모순을 극복한다. 이는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고대 철학과 예술을 탐구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르네상스 발현을 위해 중세가 남겨준 유산, 연옥
르네상스는 중세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렇다고 중세의 모든 것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세를 거치면서 발전된 개념이 르네상스 촉발의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단테의 신곡은 서론 1곡을 포함해 지옥(Inferno) 33곡, 연옥(Purgatorio) 33곡, 천국(Paradiso) 33곡 등 총 100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탄 무리가 지상에 추락하면서 깔때기 모양의 거대한 동굴이 생겼는데, 이곳이 바로 지옥이다. 그리고 이 때의 충격으로 지구 반대편에 밀려 나온 큰 산이 연옥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연옥이다.
림보가 세례를 받지 못한 순수한 영혼들이 가는 곳이라면 연옥은 조금 다른 개념이다. 그리고 이 연옥은 르네상스 발현을 위해 중세가 남겨준 유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