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씨가 11일 오후 재판을 받기위해 광주지방법원에 도착한 가운데, 이 장면을 지켜본 인근 초등학생들이 학교 복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전두환을 물러가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처벌과는 별개로 전두환이라는 세 글자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광주 시민들에게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 하는 분노의 상징이다. 1980년 5월 광주 학살의 최종 책임자라는 사실보다, 수십 년 동안 거짓을 일삼고 발뺌하며 사죄하지 않는 파렴치함에 울분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피붙이를 가슴에 묻은 유가족들조차 욕보이는 '악마'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나오는 형국이다.
만약 구호를 외친 아이들이 나이를 서너 살 더 먹은 중고등학생이었다면 그들의 반응은 달랐을까. 저들이 말하는 학교의 정치 중립 의무는 교사든 학생이든 정치 현실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뜻이다. 중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가장 많이 할애된 단원이 정치와 법이라는 걸 과연 저들은 알고나 있을까.
전두환을 향한 분노의 야유를 아이들의 '일탈 행위'로 규정한 저들의 배짱이 놀랍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담임교사가 선동하고 학교장이 방조했으니,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막무가내 논리다. 저들이 생각하는 학교 교육이란, 아이들이 정치건 뭐건 어른들이 하는 일에는 신경 쓰지 말고 고분고분하게 시험공부나 열심히 하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소식을 듣는 순간, 오래된 흑백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사진 속에는 4.19 혁명 당시 앳된 아이들이 거리에 나와 어깨동무를 한 채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는 현수막 아래서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담겨있다. 사진 속 아이들은 당시 서울 종로구 수송초등학교 학생들로 밝혀졌는데, 교과서마다 4.19 혁명을 서술하는 단원에 삽화로 실려 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은 물론 초등학생들까지도 4.19 혁명에 주체적으로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인용되는 사진이다.
저들은 이를 두고도 당시 사진 속 아이들도 교사에 의해 선동 당한 것이라고 주장할까? 아니면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며 눙칠까?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주역인 박준채는 당시 나이가 15세였고,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뿐이라는 게 유일한 슬픔이라고 포효했던 유관순은 3.1운동 당시 나이가 17세였다. 만약 지금의 초등학생이 60년 전 아이들보다 정치적으로 미성숙하다면, 교육의 무능과 병폐를 탓해야 옳지, 정치적 중립 운운하는 건 어른으로서 낯부끄러운 일이다. 저들이 목청을 돋우는 '대한민국의 질서'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한 줌도 안되는 사람들 그냥 차분하게 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