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과 함께 지난 과거를 기억하는 이사영
지금여기에
고향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이후 서울로 올라와 1965년 한양대학교 공대를 졸업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두 딸을 낳은 뒤 뒤늦게 군대에 입대했다가 제대하고 어릴 때 일본으로 간 형 이좌영이 한국에 설립한 회사 신한섬유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삶이 무너진 건 1972년 2월이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평범했던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던 이사영의 집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아무런 설명도 이유도 없이 그들은 이사영에게 수갑을 채우고 옷을 덮어 씌웠다. 그렇게 끌려간 이문동 중앙정보부 고문실에서 이사영은 기약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수 십 번이나 써내렸지만, 멀쩡히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형이 간첩 수괴라며 그에게 포섭되었다는 혐의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신문 1면을 차지할 정도로 큰 사건이었던 '울릉도 거점 간첩단' 사건이었다. 중앙정보부가 울릉도 주민들과 일본에 농업연수를 다녀온 전북 지역 사람들을 엮어서 조작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세 명이 사형을 당했고, 네 명이 무기수의 삶을 살았다. 그 외 다른 피고인들 역시 15년 남짓의 형을 받아야 했다.
이 사건의 생존자였던 이사영은 수 십 년이 흐른 지난 2014년에야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저녁에 어두울 때 지하실로 연행됐어. 옆에는 사무실이 있었고 고문실이 컸던 게 기억나. 물고문 하는 욕조도 있었어."
이사영에게 남영동 대공분실은 또다른 이문동 중앙정보부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건물 안에 들어선 그는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승강기에 오르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철제 계단을 이용했다. 당시 연행된 피해자들이 수사관에게 붙들려 걸어 올라갔던 그 원통형 철제 계단이었다.
차가운 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