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인용된 언론보도.
경향신문
이창용은 진짜 간첩이었다. 하지만 광주에 남파된 간첩은 아니었다. 남파됐다가 하필이면 5·18 기간에 붙들렸을 뿐이다.
전에도 4차례 남파된 적이 있었던 그는 1980년에 남파됐을 때는 무척 당황했다. 남한이 너무나 확연히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모의 남한 체험을 하고 왔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완벽한 남한 사람처럼 행동해야 했지만, 북에서 받은 교육이 현실과 너무 판이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인파가 많은 서울역에서 특히 당황했다. 5월 23일, 그는 결정적 실수를 했다. 할머니로 보이는 여성한테 인천 가는 방법을 물었다가 의심을 산 것이다. 2017년 11월 11일자 <오마이뉴스> 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이창용은 그 여성이 길을 가르쳐주면서 자신을 위아래로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그 뒤 이창용은 자기 길을 갔고, 그 여성도 자기 길을 갔다. 여성이 간 곳은 파출소다. (관련 기사 :
그 '북괴 간첩'은 왜 감자탕집을 찾아 헤맸을까)
여성의 의심을 느꼈다면 곧바로 서울역을 떠났어야 했는데도, 이창용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터뷰에 따르면, 발을 떼려다가 순간적으로 감자탕 생각이 났다고 한다. 서울 출신인 그는 한국전쟁 전에 부모님과 함께 종로의 뼈다귀탕(감자탕) 집에 자주 갔었다고 한다. 그 추억이 생각나, 감자탕이나 먹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서울역 주변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다가 경찰에 붙들렸던 것이다.
경찰을 보는 순간 혀를 깨물었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깨어 보니 병원이었다. 병상 옆에 신문이 있었다. 누군가 읽고 놔둔 듯한 신문이었다. 들여다 보니, 간첩 검거 뉴스와 함께 자기 사진이 실려 있었다고 한다. 기사 내용을 보니, 북에서 받은 지령과 달리 자기 임무가 '광주 잠입'으로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광주에 파견됐다는 '북한 간첩들' 알고보니...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창용은 자기를 신고한 사람을 '노파'라고 말했지만, 나이를 잘못 봤던 모양이다. 이창용 검거 뉴스 왼쪽에 실린 또 다른 기사에 따르면, 신고한 여성들은 40대 후반이었다.
두 여성은 다음 날 5050만 원을 상금으로 받았다. 서울에서 소규모 공장의 비숙련 노동자 초임이 15만 원을 넘지 않던 시기였으니, 상당한 거액을 받은 셈이다. 두 여성의 상금 수령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광주에 파견되는 간첩은 아니었지만 진짜 간첩을 신고한 것은 맞기 때문이다.
이창용이 붙잡히기 전날인 22일에는 광주 현지에서 '북한 간첩들'이 집단으로 생포됐다. 위의 <경향신문>에 실린 '간첩 용의자 5명 계엄 당국에 인계, 학생·시민이 잡아'는 이렇게 보도했다.
"시위를 벌이던 시민과 학생들은 지난 22일 하오 3시께 군중 사이에서 간첩 용의자 5명(여자 2명 포함)을 잡아 계엄 당국에 신병을 인도했다. 시민·학생들은 시위 군중 틈에 끼어들어 '불태워라' '죽여라'고 외치는 등 과격한 언동으로 선동하던 자들을 수상히 여겨 이들을 붙잡아 자체 조사를 한 결과 북괴 간첩의 용의점이 짙어 계엄당국에 신병을 넘긴 것이다."
광주와 북한을 연계하는 선전 활동의 위력이 언론을 통해 확산되다 보니, 광주 시위에 참여한 일부 시민들까지도 북한 개입설을 믿게 됐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때 붙잡힌 사람들은 무고한 시민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5·18 가두방송으로 유명한 전옥주다. 도청 앞에서 시민군에게 물을 떠다주다가 확성기를 잡게 된 평범한 시민이다. 붙잡힌 뒤 남파 간첩으로 몰린 그는 징역 15년형을 받았다가 이듬해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이렇게 미국이 공식 성명을 통해 광주와 북한의 연결 가능성을 암시하고 전두환 집단의 강압을 받은 언론들이 광주와 북한을 연결해 보도하는 속에서, 광주에 파견됐다는 '북한 간첩들'이 체포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5·18 항쟁 중에 일어난 이런 일들은, 전두환 집단이 광주 학살 초기부터 북한 개입설 조작을 신속히 추진했음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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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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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때 '북한 위협' 강조한 미국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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