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결혼 전부터도 부침개를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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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전을 부치는 것'은 명절 노동의 상징처럼 된 듯하다.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어릴 적 명절 풍경이 있다. 엄마와 큰 엄마, 작은 엄마들이 모여앉아 부침가루와 달걀을 묻혀 팬 위에 올려놓으면 다른 분이 그걸 뒤집으시고, 나와 동생, 사촌들은 그 옆을 어슬렁거리며 이제 막 완성된 부침개를 날름 집어 먹었다.
고소하고 따뜻한 기억이지만, 실제로 내가 결혼을 하고 명절에 전을 부쳐보니 일하지 않고 먹는 자에게만 따뜻하고 고소한 추억이었다. 한 자리에 우직하게 앉아서 팬에 기름을 적당히 두르고 적절한 온도에서 전을 알맞게 익혀 부쳐내는 것.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내가 보기엔 꽤 숙련이 필요한 노동이었다.
올해로 결혼 5년 차. 9월 추석이 지나고 결혼했으니 첫 명절은 이듬해 설이었다. 당시 임신 초기여서 입덧이 심해 시가에 가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남편은 "요리든 뭐든 내가 다 할 테니 마음 편하게 다녀오자"라고 약속했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도 부침개를 참 잘했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친구들과 함께 간 여행에서 남편은 꽤 능숙한 솜씨로 팬을 휘두르며 파전을 공중에서 회전시켜 모두의 환호를 받았다. 이제는 환호해주는 이는 5살 아들뿐이지만 그는 명절마다 제사마다 시가에서 파전뿐 아니라 동태전, 버섯전, 배추전, 애호박전, 동그랑땡 등 각종 전을 쉴 새 없이 부친다.
나는 명절이 영 자신 없었다. 명절 음식을 해본 적도 없었다. 엄마는 언제나 '결혼하면 많이 할 테니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부엌에 서 있지도 못하게 했다. 내내 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갔고, 아르바이트 열심히 하다가 취업했고, 그러다 결혼이란 걸 했다. 음식을 만들겠노라 하는 날이면 칼에 베이는 건 다반사였고, 살림이 소꿉놀이 같이 느껴졌다. 어차피 남편이 나보다 요리도, 청소도 잘했다.
애초에 결혼 시작부터 가사 분담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건 나를 위함이었다.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하자'가 우리 부부의 가사 분담의 핵심이었다. 남편은 학생 시절부터 직접 음식을 만들었고, 아무거나 다 잘 먹는 나와 달리 입맛도 예민하고 맛있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마침 집에서도 남편이 요리는 도맡아 하던 차였다.
드디어 첫 명절. 전을 부칠 시간이 됐다. 남편은 거실 가운데 앉아 전을 부쳐냈다. 나는 따끈하고 맛깔 나는 전을 여기저기 친척 어른들에게 날랐고, 명절 준비를 하시는 어머님, 아버님들 말씀에 추임새를 넣는 등 흥을 돋우며 내가 잘하는 걸 했다.
당연한 것들이 나는 불편했다
그러나 남편은 남편일 뿐, 시가는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공간이었다. 어머님을 비롯한 여성 친척 어른들은 나까지 들어가면 민망할 정도로 좁은 주방에 모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식을 장만하셨다. 아버님을 비롯한 남성 친척 어른들은 명절 준비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일'은 하셨지만, 그 외에는 주로 텔레비전을 보시거나, 혹은 집 밖의 일을 돌보셨다.
그러다가 차례상 배치를 주도하시거나 밥 먹을 때가 되면 음식의 간에 대해 한마디씩 하셨다. 종일 음식을 만드신 여성 친척 어른들은 차례상을 차리고 나면 차례 참석은커녕 잠시 쉴 틈도 없이 아침 밥상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셨다.
게다가 남편은 장손이었다. 결혼을 준비할 때도 사람들이 '남편이 장손인데 괜찮겠냐'고 물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나는 듯했다. 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요즘 시대에 '장손', '장손 며느리'가 뭐가 중요한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시가에 가보니 남편이 '장손'이라는 게 확 와닿았다. 도대체 '장손 며느리'는 어때야 하는지 알 수 없어 괜한 마음에 주방 일을 하겠다고 나서보기도 했지만, 아무리 '장손 며느리'의 탈을 써도 못하는 건 못하는 거였다.
시가의 전형적인 명절 모습들이 너무 답답하고 불편했다. 나 빼고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듯했다. 뭔가 나서서 말하고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명절을 거부할까 생각도 했다. 결혼 전에야 내가 명절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해도 다들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나의 '명절 거부'가 어머님들의 노동 강도만 키우는 게 될 게 분명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명절의 풍경들, 명절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명절 노동의 불합리함에 대해 남편과 대화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