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순의 가족 사진1940년대에 찍은 가족사진, 장일순은 서울에 유학 가 있어 이 사진에는 없다.
무위당 사람들 제공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지 18년째 되던 1928년 9월 3일, 강원도 원주시 평원동 406번지에서 한 생명이 태어났다. 인간에게 출생의 시기와 장소는 타의의 산물이지만 감당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잔혹한 세월만큼이나 효박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 불운한 세대였다. 일제의 식민지배체제가 완벽하게 굳혀지고,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는 탄압과 수탈이 더욱 강화되었다.
일제가 1941년 태평양전쟁을 도발하면서부터 조선 천지는 거대한 인육시장이 되었다.
징용ㆍ징병ㆍ위안부 등 각종 명목을 붙여 이땅의 청장년들을 침략전선으로 끌어가고, 자원이라고 이름붙은 모든 쇠붙이를 일본으로 반출했다. 그리고 해방과 분단, 6ㆍ25 동족상잔과 이승만ㆍ박정희 독재시대를 거쳤다. 광기의 시대에 용케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다시 신산한 삶을 살아야 했다.
장일순은 아버지 장복흥(張福興)과 어머니 김복희(金福姬) 사이에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장남 철순이 열다섯 나이에 사망하여 일순은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아버지는 원주초등학교와 원주농업고등학교 설립에 토지를 기증하는 등 교육사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열의를 보였다. 큰 사찰의 시주(侍主)였다가 천주교로 개종하고 충실한 신자가 되었다.
장일순의 부모는 원주에서 3번째로 부유한, 시골에서는 비교적 여유있는 가정이었다. 집은 500평 정도의 부지에 안채는 기와집이고 사랑채는 초가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