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살림' 조감도미군기지 '캠프 그레이'가 있던 자리(대방역 맞은편)는 서울시의 '스페이스 살림'이 들어서기 위한 공사가 한 참 진행 중이다.
서울시
막상 도착해보면 미군기지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한때 동작구민들의 텃밭으로 이용되기도 했던 이곳은 '여성‧가족의 메카'를 지향하는 '스페이스 살림'이 들어서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바로 그 공사 현장이 2007년까지 미군기지 '캠프 그레이'가 있던 곳이다.
1952년 이곳에 처음 들어선 '캠프 그레이'는 표면상 물류기지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미군 '502 군사정보단'의 비밀스러운 첩보활동 공간이었다. '502 군사정보단'에서 일한 마이클 리가 쓴 < CIA요원 마이클 리 >(조갑제닷컴, 2015)에 따르면, 해당 부대는 "A(알파), B(브라보), C(찰리), 3개 중대로 편성"돼 있었는데, 마이클 리가 속해 있던 "알파중대는 한미 합동으로 북한 귀순병, 귀순민간인, 자수간첩, 체포간첩, 송환어부들을 상대로 심문 작업을 했"고, "브라보중대는 미군 단독으로 방첩활동을 했으며, 찰리 중대는 미군 단독으로 대북공작 활동을 주 임무로 했"다고 한다.
당시 미군은 <한미양해각서 미8군 G2 정보훈령 I-65>에 따라 대공 수사, 대공 정보활동을 주도적으로 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 활동에 따른 비용도 미국 정부가 지출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미군이 주도하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돼 있었는데, 이 같은 상황은 1974년 미국이 한국 정부에 권한을 이양할 때까지 계속됐던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리의 증언에 따르면 '502 군사정보단'은 김일성 밀사 황태성 사건, 실미도 사건 등 크고 작은 대공 사건에 개입했다고 한다. 황태성은 '박정희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로 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친구이기도 했다. 5.16 쿠데타 직후 김일성의 밀사로 내려와 흑석동에 거처를 만들고 박정희와 접촉을 시도하던 중 중앙정보부에 연행됐다.
그런데 미국에 즉시 알리지 않아 한미간에 갈등요인으로 작용하는데, 중앙정보부가 신변 인도를 거부하면서 결국 시내 반도호텔로 출장 가서 조사했다고 한다. '실미도 사건'은 실미도 부대원들이 마침 대방동까지 진출한 관계로 이를 직접 파악한 마이클 리가 곧바로 개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월남자와 귀순자 그리고 간첩의 숙소 <대방동 수용소>
한편,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누르기 위해 기획된 김만철씨 일가 귀순사건(1987)의 김만철 가족과 대한항공 폭파사건(1987)의 김현희도 <대방동 수용소>를 거쳐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모아 진행된 '2.7 범국민추도회' 다음날인 1987년 2월 8일 늦은 밤에 김포공항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김만철씨 일가를 태운 차량이 취재 기자들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도착한 곳도, 다음날 시내 관광을 위해 출발한 곳도 바로 이곳 <대방동 수용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