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러브의 가족들 조던이 러브 일가에 입양될 당시 이미 그 가정에는 5명의 자녀들이 있었다. 그 중 두 명은 친생자녀였고, 나머지 셋은 그가 오기 1년 전에 입양된 자녀들이었다. 조던(앞줄 가운데)을 입양한 뒤에도 부모님은 정신적 장애가 있는 아동 한 명을 위탁 보호했다. 그리고 후에 그 아이까지 입양하여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정현주
그는 고등학교까지는 홈스쿨링을 했다. 주로 어머니와 함께 했는데, 열 번의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기간을 거쳐야 했던 그에게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도 학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그 후 조던은 대학에 진학했다.
홈스쿨링만 했던 그에게 대학 생활은 사회생활에 눈뜨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교실 정리를 어떻게 하는지와 같은 일상적인 일들도 대학에서 배웠다. 대학 생활은 소인증이란 장애를 딛고 사회생활에 도전할 수 있도록 그를 안내했다.
그가 다녔던 대학은 장애인을 위한 학교가 아니었지만, 그가 특별히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했고, 많은 이들이 도움을 줬다. 처음 몇 학기는 전동휠체어가 있어 수업에 필요한 책과 학용품을 옮길 수 있었다. 당연히 대학 생활 동안 장애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조던은 성실하고 진지하게 공부에 몰입했다. 학점도 꽤 높게 유지했다. 한 마디로 성공적인 대학 생활이었다.
그는 현재 홀트인터내셔널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에 자원봉사자로 시작해서 정직원으로 고용되어 10년에 이른다. 현재는 승진하여 IT팀에서 다양한 프로젝트와 연관된 난이도 높은 일을 하고 있다.
그에게 인종차별에 대해서 묻는 것은 무의미했다. 세계적으로 성인 중에 90cm도 안 되는 사람들은 매우 적기 때문에, 그의 신체적 특성이 너무 뚜렷해서 인종적인 차이나 차별을 느낄 여지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도 그저 하나의 신체적 특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매우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조던은 정기적으로 'the Little People of America'회의에 참석한다. 이 회의는 전 세계를 돌면서 열리는데, 거기서 그는 함께 소인증을 이겨낼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질병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또 그는 미국 여러 지역을 돌며 갈라쇼에서 기조연설을 하거나 콘서트에서 그의 특별한 경험을 얘기하기도 한다. 뉴스 기사에서도 그의 입양 스토리를 다뤘다. 그러는 동안 그는 단지 입양 경험을 넘어서 공공을 위한 연설을 하는 동기 부여 연설자가 되었다.
입양된 후 조던에게는 한국에 방문할 기회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 여행에서 그가 일산홀트복지타운을 찾았을 때, 자신을 돌봐 주었던 물리치료사를 비롯해서 최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 혹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를 돌본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조던은 그들과 함께 웃고 울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삶의 한 부분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그 방문에서 그는 사회복지사와 함께 자신의 입양 서류들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서류들은 단지 조던이 유기되었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결국 친생가족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현재 그에게는 생부모를 찾기 위한 특별한 계획은 없다. 또 생부모에 대한 정보를 모른다는 이유로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그는 생부모들이 자기가 4살이 될 때까지 동안 보듬어준 것에 감사한다고 했다. 조던은 그들이 자기를 포기한 것은 그의 장애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고 말했다.
"저는 그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힘들었던 과거와 관계없이 저는 그분들을 용서했고, 생부모님들은 언제나 제 삶의 일부라는 것을요. 그리고 지금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요."
"시설 아동, 장애 아동의 '목소리'가 되어 주겠습니다."
그는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한국이란 나라가 아름답고 사람들이 멋진 것에 비하면,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매우 부족해 보인다고 했다. 그 예로 거리에 장애인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었다. 조던은 거리에서 보이지 않던 장애아들을 고아원에서는 많이 보았다.
인터뷰 내내 그는 서슴지 않고 해외 입양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많은 아이들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유기되고 고통 받을 이유가 없으며, 그들에게 사랑받을 기회, 차별받지 않을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그저 베풀어야 할 선의가 아니라, 그 아동들이 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그의 이런 신념은 우리의 입양 현실과도 연결되어 있다. 입양 통계를 보면 장애 아동은 국내 입양에 비해 해외 입양이 압도적으로 많다. 결국 해외 입양을 막으면 시설에 있는 장애 아동들 중 다수는 입양의 기회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는 말했다.
"만약 제가 한국을 떠나지 못했더라면, 제 삶은 지금과 `크게 달랐을 겁니다. 다수인 비장애인들과는 달리 저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를 충족시키지 어려웠겠죠. 한국에서의 제 삶은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생활의 불편 이외에도 장애와 관련된 여러 오명과 꼬리표와 싸워야 했을 거고, 교육 받거나 직장을 구할 기회를 잡지 못할 가능성도 높았을 겁니다.
물론 한국의 장애에 대한 수용력이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저는 모든 아이들이 제가 누렸던 것처럼 입양을 통해 평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시설의 아이들, 특히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대변할 것입니다."
그의 메일은 다시 한 번 우리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 한국을 떠남으로써 비로소 스스로를 구할 수 있었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그의 목소리에 겹쳐졌다.
그들을 붙잡는다고 우리 현실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은 궤변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들의 목소리와 삶을 찾도록 도울 수 있는 길이 해외 입양이라면, 한 생명의 무게가 온 우주의 무게와 같음을 믿는다면 '아름다운 사람', 조던 러브의 신념에 동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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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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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해외 입양으로 행복해진 사람들은 말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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