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힘들지만 생리는 일단 여성 대부분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중요하다.
최은경
- 제가 아는 생리는 임신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으로, 임신이 되지 않으면 준비되었던 자궁 벽이 무너져내려 피가 나오는 거예요. 아이에게도 그렇게 설명해 주었고요. 그런데 어느 산부인과 의사가 생리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봤는데, 단순히 피가 아니고 조직이라고 해서 놀랐어요.
"생리에 대해 오해하는 내용들 중 하나가 생리할 때 나오는 피를 막연히 오줌 같은 배설물로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생리는 더럽고 지저분한 것으로 여기게 되죠. 하지만 기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생리는 배설물이 아니에요.
여기서 잠깐, 아는 체 좀 하고 지나갈게요. 여성마다 다르지만 일정 나이가 되면 많은 여성들이 자기만의 배란 시기를 갖게 돼요. 배란기가 되면 몸속 난소에서 난자가 만들어져 나팔관을 타고 자궁 쪽으로 슬슬 산책을 하러 가죠. 그 시기쯤 우리가 피임 없이 섹스를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 잠시만요. 아는 체하시는 거 맞나요? 그 정도는 요즘 유치원생도 알 것 같은데요. 아이들이 노래도 불러요. "엄마와 아빠가 사랑을 하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 우리가 만들어져요"라고.
"맞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봐야죠! 여성의 몸속에 들어온 수많은 정자 중에 오직 끝까지 살아남은 한 정자만이 나팔관까지 와서 산책 중인 난자를 만나면 수정란으로 변신을 해요. 그렇게 수정란이 되면 사이좋게 자궁 안으로 들어가 두꺼워진 자궁 안쪽 벽(내벽)에 안전하게 자리를 잡죠. 그게 바로 우리가 아는 임신이에요. 기자님도 말했듯 여기까지는 정말 너무 유명한 스토리죠. 그놈의 '씨앗' 이야기."
- 하하하. 맞아요. 그놈의 씨앗 이야기는 정말, 너무 많이 들었네요. 그런데 뭘 아는 체하시려고 했던 거예요?
"네, 그런데 사실 혼자 산책을 하던 난자는 정자를 아예 만나지 않거나, 만났지만 수정은 되지 않는 등의 이유로 혼자 산책을 마무리할 때가 더 많아요. 그렇게 되면 자궁에서 임신에 대비해 준비했던 일들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에요. 난자가 산책을 시작할 때 호르몬은 자궁 안쪽 벽을, 이를테면 영양분을 채워 두껍게 만들어서 임신을 준비하거든요. 수정이 되면 안전하게 자궁벽에 자리를 잡고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죠.
그러다 수정이 되지 않고 난자 혼자 산책을 마무리하게 되면 두꺼워진 자궁벽도 할 일이 없어 두꺼워진 부분이 허물어져 내려요. 이 허물어진 자궁 벽과 난자가 함께 질을 통해 자궁 밖으로 나오는 걸 '생리'라고 부르는 거예요."
- 이쯤에서 방청석 모드로 빙의해야 하는 거 맞죠? 아~하!
"웃으라고 한 말씀이실 테니 웃겠습니다. 하하. 다시 전문가 모드로 돌아가면, 생리가 피처럼 액체로만 흐르지 않고 굴 같은 덩어리가 섞여 나오는 이유도 자궁 안쪽 두꺼워진 벽 조직이 허물어져서 같이 나오기 때문이에요. 배설물과 전혀 다르죠. 더러운 건 더더욱 아니고요.
가끔 생리대에 묻은 생리혈 냄새 때문에 생리가 더럽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생리혈 자체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에요. 그건 생리를 빠르게 흡수하고 새지 않고 잡아두기 위해 생리대를 만들 때 사용하는 화학용품과 생리가 뒤섞여서 나는 냄새예요. 원래 생리혈의 냄새는 우리 몸에 흐르는 피와 같아요."
생리전증후군은 일종의 '질병'이다
- 그렇군요. 그런데 생리할 때뿐 아니라 생리 전에도 겪는 생리전증후군에 대해 말씀하셨잖아요. 그것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증상이 조금씩 달라지나 봐요. 사람마다 다양한 증상이 있는 걸로 아는데, 요즘 저는 가슴이 그렇게 아파요.
"다시 전문가 모드로 돌아가서 설명할게요. PMS는 'premenstrual syndrome'의 약자에요. 우리는 '생리(월경)전증후군'이라고 불러요. 말 그대로 생리 전에 겪는 변화들을 뜻하는데 몸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아주 다양한 증상들이 나타나요. 육체적으로는 피로, 에너지 부족, 식욕증진 혹은 감소, 수면장애, 스트레스 심화, 가슴 팽창 및 통증, 두통, 소화불량, 복부 팽만감 등이 있어요.
또 심리적으로는 우울한 기분, 절망감, 불안, 긴장, 짜증, 분노, 민감함 등을 예로 들 수 있어요. 전문가들에 따르면 '생리전증후군'은 대략 배란 직후부터 나타나 생리가 시작되기 5일 전쯤 그 상태가 최고조에 오른다고 해요. 생리주기마다 위의 증상들을 겪는다니 정말 힘들겠죠? 그것도 아이들이 겪는다면 아마 더 그럴 거예요.
예전에는 정확한 명칭도 없고 겪는 증상도 다 달라서(없는 여성도 물론 있고요) 원래 성격이 까칠하고 예민하다고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또 여성이 정당한 일에 분노하고 이의를 제기해도 '오늘이 그날이냐?'라고 비웃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죠. 이렇게 생리를 비하하고, 그걸 이용해서 여성의 생각과 감정을 폄하하는 일도 정말 많았어요.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고 여성의 몸과 생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생기면서 생리 전에 나타나는 증상들이 성질 나쁜 개인이 부리는 변덕이 아니라 일종의 질병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었어요. '생리전증후군'이라는 이름도 생기고요. 가임기 여성의 75%는 '생리전증후군'을 한두 번씩은 경험한다고 해요. 하지만 이 중 5~10%는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의 증세를 경험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와 주변의 도움 없이는 감당하기 힘들어요.
저의 경우 첫 생리를 시작으로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 생리전증후군은커녕 약한 생리통도 겪어본 적이 없어 생리 전에 짜증을 내거나 생리할 때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체육을 못 하는 친구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굴 낳는 기분 때문이라면 모를까). 겉으로 위로해주고 배려하는 척은 했지만 그게 어떤 기분인지 몰랐어요. 심지어 생리 때 아파서 엎드려 있는 친구가 여성스럽고 연약해 보여서 부럽기까지 했으니, 말 다 했죠.
그랬는데, 첫 아이를 낳고 3개월 후 다시 생리를 시작할 때 첫 생리통을 겪었어요.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자주 듣던 '밑이 빠지는' 느낌이 뭔지 알게 되는 순간, 식은땀이 줄줄 나더라고요. 순간 고등학교 때 친구 생각이 나면서 '아, 연약해서 엎드려 있었던 게 아니라 허리를 펼 수 없어서 못 일어난 거였어!'라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그 이후에도 점점 늘어나는 생리전증후군 증상과 심해지는 생리통을 겪으며 같은 여성이지만 같이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생리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생겼지요. 진심으로요.
우리가 겪지 않아 몰라서 하는 말과 행동으로 어쩌면 당사자들은 고통스럽고 외로운 시간들을 더 힘들게 보냈는지도 몰라요. 비록 내가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알려고 노력하고 관심을 가지는 일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를 때는 함부로 말하거나 판단하지 않아야 하고요. 그래서 생리를 하지 않는 남성들도 생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종종 '생리 날짜 하나 조절 못 해서 아무 때나 하냐', '생리는 참을 수 있는 거 아닌가'라고 말하는 남자분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내 가족 혹은 여자친구, 동료 등에게 늘 있는 일인데, 생리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이런 질문은 하지 않겠죠? 내 일이 아니어도 알아둔다면 인구의 절반인 여성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 생리에 대한 교육을 여자아이들에게만 하면 안 되겠군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더 넓게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남자아이에게도 생리에 대해 알려줘야 할 것 같아요. 쌤 근데... 진짜 궁금한 질문은 아직, 시작도 못했어요. 근데, 청소년들도 생리컵을 쓸 수 있나요?
(* 답변은 다음 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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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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