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 요리와 화이트 와인
차노휘
식당 맞은편에 성당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서성거렸다. 아, 일요일이었구나. 그때서야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알았다. 걷다보면 날짜도 요일도 무심해졌다. 만약 이곳이 집이라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특별할 것 없을 일상을 보낼 그곳이었지만 일요일이라는 자체가 나를 흔들어 놓았다.
나는 몸을 흔들거리면서 잿빛 골목으로 들어갔다. 스페인의 해는 저녁 9시 30분 즈음에야 지지만 골목은 온통 잿빛이었다. 먹구름 때문이었다. 걷는 중에도 검은 머릿속에는 취기가 작은 불꽃처럼 터졌다. 그 덕인지 나는 상념을 이어갈 수 있었다.
요즘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고 있었다. 내 영역을 누군가가 침범하는 것에 잔뜩 신경 쓰고 있었다. 혼자인 것은 좋으나 다른 사람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는데도 나는 나 이외의 것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만담가인 현희가 부담스러운 이유이기도 했다. 그녀는 새 인물을 반가워했다. 큰 목소리로 질문을 던져놓고 그 반응에 따라 그녀의 이야기를 풀어놓기를 좋아했다. 다른 때처럼 내게 흥이 있었으면 그 반응에 호응해주면서 분위기에 젖어들었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고 그 시간들이 나를 과묵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여전히 우중충한 거리를 걷는데 밀물처럼 허전함이 몰려왔다. 이런 허점함 속을 헤매느니, 다시 그 자리로 가서 한바탕 실컷 떠들 수도 있지 않는가. 하지만 뒤돌아서지 않았다. 허전함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찾으려 했다. 달리 생각하면 날씨도 흐려서 걷기에도 좋고 발목도 발바닥 물집도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내게는 나쁠 것이 없었다. 완주하는 그날, 다 나을 수도 있었다. 나는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에서 100km를 더 걸을 계획이니 그렇더라도 감사할 일이었다. 수요일 이른 아침에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10시 30분 미사를 볼 예정이었다. 조그만 힘을 내면 목표한 곳에 '곧'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허전할까?' 아, 내가 알고 있는 이들은 다들 도착했다. 연석은 금요일에, 데미안은 토요일에, 데이비드는 오늘(일요일)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들이 먼저 도착해서 일까? 내가 허전한 이유가? 뒤처졌다는 느낌? 아니었다. 나는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와 함께 이 수고로움을 공유하고 함께 축하해줄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에 더 비중을 두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혼자이고 싶어하면서 또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 관계라는 것이 나를 까다롭게 했다. '아무나'하고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이것은 순전히 내 '고집'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대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 책은 '관계'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간절하게 다가오는 대목들이었다.
여우와 어린 왕자와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