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각 아래 낙서 그림
차노휘
스페인 시골 풍경(메세타 포함)은 거대한 퀼트(quilt) 보자기이다. 농경지가 너른 들판과 낮은 둔덕으로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유사한 색의 세모, 네모 헝겊을 덧대어 바느질 해놓은 것과 같다.
그래선지 일주일 이상 풍경에 노출된 눈에는 이 풍경이나 저 풍경이나 비슷하게 보였다. 마을마다 성당이 있었다. 성당은 모두 오래되었고 비슷한 양식 건축물이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일주일이 지나니깐 사진 찍는 것도 귀찮아진다고. 이 풍경이 저 풍경 같고 저 풍경이 이 풍경 같다고. 나도 그 말에 동감했다. 처음보다는 확실히 사진 찍는 횟수가 줄었다. 이제는 바깥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는 대신 마음의 풍경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변화 없는 풍경을 벗삼아 마른 흙길을 터벅거리며 걸었다. 신발 밑창에 돌멩이가 괴었다가 빠져나갔다. 햇살만큼이나 강한 정적이 내 걸음을 잡고 늘어졌다. 간혹 먼지바람이 일었다. 밀 냄새가 맡아졌다. 마음의 풍경이라. 머뭇거리면서 어렸을 때로 되돌아가봤다.
그래, 감나무에서 떨어졌어. 아니, 나는 높은 곳에서 자주 떨어지거나 넘어졌어. 늘 중심이 흔들렸지. 그래 중학교 때 초등학생인 동생하고 대판 싸웠지. 말 안 듣는 동생을 보기 좋게 힘으로 제압해서 큰소리 좀 치려했는데 동생을 이겨내지 못했어. 무승부였지. 한참 성장하던 동생. 나보다 훌쩍 커버려 그 뒤로 몸싸움을 할 수가 없었어.
머리 위로 낮게 새 한마리가 날아갔다. 정적을 깨는 새가 고마워 뒤돌아봤다. 그것은 내 마음과는 달리 잽싸게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려고 했다. 사라지려는 찰나, 순례자 한 명이 점처럼 나타났다. 그는 점점 모습을 키워갔다. 순간 셰퍼드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아주 너른 마당 한쪽에 아버지는 개를 키웠다. 등치 큰 셰퍼드였다. 몇 년이 지나자 그 개는 사라졌고 조그마한 강아지가 묶여 있었다. 개가 사라질 때마다 무감각했던 어린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야 가슴이 아팠다. 깜박 잊고 한여름 내내 씻지 않고 처박아놓았던 보온밥통에서 맡아지던 냄새처럼 고약했다. 의외로 상념들이 순서 없이 펼쳐졌다. 내 속에서 한없이 쏟아지는 그것들을 나는 그대로 두었다.
햇살은 더 따가워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몸을 약간 숙인 채로 신발을 보며 걸었다. 뒤에서 바싹 따라오던 순례자가 가볍게 인사하고 앞서 갔다. 호리호리한 키에 괴나리봇짐처럼 짐이 가볍다. 훌쩍 날아가는 것만 같다. 사는 데에 그리 많은 짐은 필요 없을 것이다.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짐들. 최소의 것들. 그래야 저렇게 훌훌 날 듯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 또한 최소한의 것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더 쏟아내야 했다.
이번에는 과거에서 훌쩍 뛰어 현재로 되돌아왔다. 맥스는 잘 가고 있겠지. 프란체스코는 어디 즈음 걷고 있을까. 12일 동안 휴가를 내서 걷는다던 니콜라는 오늘이 마지막 길 여행일까. 아님 집으로 가는 중일까. 데이비드는 부르고스에서 생일 맥주를 마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