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2월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청와대
그런데 옛날 왕들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하나 더 있다. '대한민국 왕'이 '자기 돈' 쓰고 욕먹는 것도 이해되지 않겠지만, 대한민국 왕이 '암행어사'를 시켜 '자루'를 들고 해외로 나가도록 한 정황이 있다는 점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의 신임을 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재임 시절 묘한 행보를 많이 남겼다. 미국에 갔다가 단독으로 캐나다 국경을 넘은 뒤 모종의 사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행보가 이명박 비자금과 관련돼 있다는 의혹이 퍼져 있다.
위에 언급된 책에서 주진우 <시사IN> 기자는 "원세훈이 국정원장으로 있을 때 미국과 캐나다를 수차례 드나들면서 (검색 대상이 되지 않는) 외교행낭을 이용해 돈을 빼돌렸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라고 진단한다. 이 책에 따르면, 원세훈의 심복이었다가 버림을 받은 국정원 직원은 이렇게 증언했다.
"국정원장이 미국에 가면 당연히 영사·수행원이 따라 붙는데, 원세훈 원장은 다 떼놓고 혼자 움직였어요. … 꼭 미국을 갔다가 캐나다 국경을 혼자 넘어가요. 경호직원들도 다 따돌리고."국정원 직원에 따르면, 원세훈은 재임 중에 외교행낭을 들고 10여 차례 미국·캐나다 국경을 넘었다. 그 직원은 국정원장이 그런 식으로 정보 활동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장 직무와 무관한 활동을 위해 캐나다 국경을 넘었다는 것이다.
대통령 밀명을 받은 사람이 캐나다 국경을 넘으면서부터 단독 밀행을 했다면, 옛날 왕들의 눈에 원세훈은 캐나다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일종의 암행어사가 되는 것이었다. 암행어사는 강원도·함경도 같은 도 단위로 파견됐다. 원세훈은 쉽게 말해 '캐나도(道) 암행어사'였던 셈이다.
옛날 왕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의문을 가질 것이다. 조선시대 왕들이 암행어사를 파견한 목적 중 하나는, 지방에 보관된 나랏돈을 사또들이 축내지 않을까 감시하는 데 있었다. 나랏돈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의 암행어사인 원세훈은 '캐나도'를 경유해 나랏돈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나랏돈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빼돌리기 위해서 암행어사처럼 밀행했다는 의심이다. 왕이 암행어사를 통해 자기 돈을 빼돌렸다는 의혹은 옛날 왕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 군주가 거액을 해외로 빼돌렸다면 대개는 둘 중 한 가지 상황이다. 해외로 비자금을 옮긴 뒤 나라를 버리고 망명할 생각이었거나, 아니면 그 돈으로 외국 용병부대를 끌어와 국내 정변을 진압할 생각이었거나. 둘 중 하나다. 임금이 암행어사를 시켜 자기 돈을 해외로 빼돌린다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으므로, 옛날 왕들은 이명박이 망명을 계획했거나 용병부대를 들여오려 했을 거라고 추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이명박·박근혜가 나랏돈을 쓴 일로 지탄을 받는 일이나 이명박이 원세훈을 시켜 자금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는 일은 왕조시대 군주들의 눈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다. 현대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므로 대통령일지라도 나랏돈에 손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그들의 의혹은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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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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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조선 임금이 이명박을 본다면... 갸우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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