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개척단 정영철씨
남소연
"국가발전향상과 국민의 생활안정질서를 위해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써 힘써 노력해주시는 (박정희)대통령 각하 앞에 감사를..."이라고 시작하는 1966년의 탄원서는 민정식 당시 서산개척단장의 각종 국가지원금 착복과 운영 부조리를 고발하며 내사에 착수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탄원인은 '대한청소년 개척단 서산자활정착사업장 탄원인 일동, 800명 대표 정용일'이라고 돼 있다. 민 단장의 서산개척단 운영 비리에 대해 다른 간부급 관리자들에게서도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서산개척단 출신 정영철(77)씨도 물론 '탄원인 일동 800명' 중 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1966년 당시엔 이 탄원서가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그건 우리가 쓴 게 아니여. 정용일이 같이 최고 높은 간부들이 쓴 거니께. 민정식 단장이 중간에 혼자 도적질을 너무 심하게 하니께 쫓아내버리려고 쓴 거지."정용일 감독관은 당시 민정식 단장의 오른팔로 불리던 개척단 내 실세였다. 그는 탄원서에서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던 개척단의 근황을 소개하며 이렇게도 썼다.
"저희들은 지난 날 사회악을 조성해온 탓으로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어온 무의무탁한 남녀들로서... (중략) 반성과 청산된 선도의 길로 달리기 시작해서 오늘날에는 정부당국에 적극적인 지원으로 완전한 인간 개조는 물론 125쌍 합동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저희들과 같이 불우했던 여성들과 짝을 지어 그 속에서는 벌써 제 2세들이 탄생하여 더욱더 보람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정영철씨는 "미친 소리"라고 했다.
"말도 안 되지. 허허허, '보람된 나날'? 민정식이가 나쁜 짓 했단 내용은 맞어. 근데 보람된 나날? 합동 결혼은 무슨 다 강제로 결혼시켜뿐 건데. 그 밑에서 우리들은 맨날 얻어터지면서 뻘바닥 논 맨드느라고 뒹굴고 있었던 거 아니여."그러나 이 '말도 안 되는' 탄원서에도 당시 개척단 상황의 참혹함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 "형편없이 영양실조에 걸려있으니 부식이라곤 소금 외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일까요?"- "주택은 지붕이 뚫어졌고 비가 새고 방은 흙벽 속에서 자는데도..."- "식량은 겨우 1일분 씩 구입해다 먹을 정도로 자금이 두절상황에 놓여..."1966년 탄원서 존재조차 몰랐던 이들이 쓴 2018년 탄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