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좌)과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좌)
박은태
촛불정국이 시작되던 지난해 10월 말에 제주도 강정마을에 계신 문 신부님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백기완 선생님이 보내준 큼지막한 붓글씨 액자를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곳에 걸어 놨다.
"돌개바람 갈라치는 외로운 깃발이여."보름 뒤에 서울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 가서 백기완 선생님을 만났다. 전에 보이지 않던 커다란 새김판이 방문 정면에 걸려 있었다. 문 신부님이 나무판에 새긴 건 <묏비나리> "산 자여 따르라"였다.
이렇게 거리의 백발 투사와 길 위의 신부는 평생을 함께한 동지이자 서로의 자부심이었다.
백기완 선생님과 문정현 신부님은 수십 년 동안 거리에서 지치지 않고 이 땅의 비정규직에게 따뜻한 연대의 손을 내밀었다. 우리 동지이자 우리 시대의 스승, 백발의 두 어른이 있어서 무척 고맙다.
두 어른이 만들고 있는 <두 어른> 책 수익금은 모두 '꿀잠'에 보탠다. 서울 영등포역 근처 25년 된 다세대 주택 건물 매입과 새 단장 비용이다. '꿀잠'은 두 어른의 붓글씨, 새김판 전시회 수익금으로 시작했지만 빚이 많다. 이 책 3만 부가 팔리면 비정규노동자들이 행복한 미래를 시작할 수 있다.
<두 어른>이 세상에 나올 때쯤이면 비정규노동자들이 꿀잠에서 하룻밤을 쉬어갈 수 있다. 풍찬노숙하는 지친 몸들이 추스를 수 있는 방과 빨래방, 샤워실도 있다. 노동자들이 부당 노동 행위에 대응할 수 있도록 무료 노동 상담과 교육도 한다.
오늘도 지팡이를 들고 길 위로 나서는 두 어른. 비정규노동자들에게 내민 이들의 늙은 손을 맞잡아주기 바란다. 거리의 백발 투사와 길 위의 신부가 평생 동안 길 위에서 벼리고 벼린 명쾌한 문장들을 책으로 만날 수 있다. '외치는 자'와 '남은 자'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들면서 피어올린 정신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시대, 진정한 스승을 만날 수 있다.
벽돌 한 장 얹자. 이제 기력이 쇠한 팔십 살의 두 어른이 혼신의 힘을 다해 쌓아 올리는 4층 벽돌 건물 <꿀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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