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아영>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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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달라지는 건 있다. 확실히 있다. 그렇지만 인생이란 것에 능숙해지는 일이 어른이 되는 일이라면, 40대에게도 어른이 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누구에게나, 몇 살이건, 그 나이는 처음 살아보는 나이다. 이게 포인트다. 40대는 이 처음 맞는 '중년'이라는 시간이 당황스럽고 생경하다.
노아 바움백은 젊은 힙스터들의 일상을, 그 아이러니를 비꼬는 일에 재주가 있다. 물론 누구나 힙스터들을 비꼰다. 힙스터라는 단어 자체가 그렇게 쓰이라고 남아있는 거니까. 그런데 이걸 악의에 차 진지하게 비꼬면 우스워진다. 그들이 그렇게 악한 존재도 아닐 뿐더러 무엇보다 누구나 마음속에 힙스터가 있음을, 그리고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감독 자신도 영화 <위아영>의 주인공 부부와 같은 40대이지만 분명히 힙스터스러운 면이 있을 거라고, 그래서 잘 묘사하는 거라고 자신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노아 바움백이 잘 묘사하는 20대 힙스터 젊은 부부를 대립항에 놓고 40대 '젊은 부부'의 삶을 무겁지 않게 보여주며 관객과 함께 어른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영화는 헨릭 입센의 희곡, <대건축사 솔네즈>를 인용하며 시작한다.
"요샌 젊은이들을 보면 어찌나 거북한지."
"네? 젊은이들이요?"
"하도 화를 돋워서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오. 와서 문 두드리고 들어오려 할까 두렵소."
"차라리 문을 열고 들여보내주세요."
"문을 열라고?"
"네, 살며시 문을 열도록. 당신에게도 그게 좋아요."
"문을 열라고? 문을 열라고?!!"
뉴욕에 살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 조쉬와 그의 아내 코넬리아는 나름대로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커플이지만 40대가 되니 가장 친한 커플친구 마저 아이를 낳고 만날 때마다 육아 얘기만 늘어 놓는 통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 부모가 되었다는 뿌듯함이 어찌나 큰지 친구는 아기 초음파 사진을 타투까지 했을 정도다.
"인생 최고의 아름다운 경험이었어. 애 하나 가져.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애 갖고 나서가 진짜 인생이더라."애를 낳지 않는 이들에게 부리는 애를 낳은 이들의 이 오만하고 지긋지긋한 오지랖, 주인공 조쉬와 코넬리아 역시 기분이 상한다.
"자기는 애 갖기 싫지? 난 싫어."
"난 이대로가 좋아."
"그래 당장 내일 파리로 뜰 수도 있고!"
"그래, 땡처리 항공권 구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 달 전엔 준비해야해."
"말이 좋아 한 달이지."
"우리 로마 그렇게 갔잖아. 우리 마지막으로 로마 간 게 언제지?"
"2006년 아니야?"
"그렇게 오래 되었다고?"
"맞아."
"자유가 있단 게 중요한 거지 그걸로 뭘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야."아이를 안 키우며 자신의 삶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자유, 그 삶에 만족하지만 주위에서 하나둘씩 애를 낳고 "이것이 진짜 삶이다"라고 강요하기 시작하면 흔들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이 자유를 제대로 즐기고 있기는 한 걸까?'
조쉬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지만 10년째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와 계급, 권력의 부조리를 드러내지만 권력 관계 자체에 집중하지는 않는, 그냥 들어서는 잘 모르겠는 거창하고 진지한 다큐다. 해석학 분야의 저명한 석학과 인터뷰를 하고 터키의 정치 상황을 촬영하고 매우 고심해서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그가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하는 다큐멘터리 관련 강의에 젊은 힙스터 부부 제이미와 다비가 찾아온다. 다큐멘터리 감독 지망생인 제이미와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다비, 그들은 조쉬의 팬을 자처해 함께 저녁식사까지 하게 된다.
"결혼했다고 했지? 젊은애들 같지 않네."
"할렘의 비어있는 급수탑에서 했어요."
"멕시코 밴드도 부르고 워터 슬라이드도 만들고 근사했어요!"
"그래. 우린 시청에서 했는데."그러니까 조쉬와 코넬리아가 생각하는 젊은이와 요즘의 힙스터는 정반대다. 그들은 힙을, 남과 다른 것을 쫓기에 아날로그에 집착한다. 40대의 조쉬와 코넬리아가 자동차를 탈 때 20대 힙스터 커플인 제이미와 다비는 자전거와 롤러브레이드를 탄다. 조쉬가 맥북으로 서류 작업을 할 때 제이미는 타자기를 쓴다.
조쉬와 코넬리아가 아이폰으로 음악을 듣고, 아이패드로 뉴스를 보고, 스마트 TV로 드라마를 보고, 아이워치를 찬 채 짐에서 운동을 할 때 제이미와 다비는 바이닐을 모아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고 이베이에서 구한 VHS 비디오 테잎으로 영화를 보고 보드게임을 하고 공터에서 농구를 한다. 가구를 직접 만들고 집에서 고양이와 닭을 키운다. 세계 최고의 힙스터 커플의 일상은 이런 생산적인 열기로 가득차있다.
"요새 어떻게 지내?"
"재밌는 부부를 만났어. 제이미와 다비 부부. 뭐든 다 만드는데 이게 전염되더라고, 난 이제 책상까지 만들게 생겼어!"
"몇 살인데?"
"한 25, 26? 26, 27?"
"애기들이잖아!!! 9년 전엔 투표도 못 했겠네."
"근데 결혼했어."
"왜???"
"레코드 콜렉션도 기가 막혀. 제이지, 씬 리지, 모차르트. 취향에 차별이 없어. 구니스, 시민케인. 고급, 저급 안 가리고 전부 포용한다고!"조쉬와 코넬리아, 특히 조쉬는 이 젊은 힙스터 커플에 푹 빠져버렸다. 만날 때마다 육아 얘기나 하는 친구들보다 이 젊은 커플이 훨씬 재밌으니까. 조쉬와 코넬리아는 제이미, 다비 커플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도심의 길거리에서 비치 없는 비치 파티를 하고 24시간 보드카에 재운 젤리를 먹고 지하철 선로를 탐험하고 자전거를 새로 산다.
그러면 그 젊은이들의 일상이 조쉬와 코넬리아에게 딱 들어맞는 것일까. 코넬리아는 친구와 함께 아기와 함께 하는 뮤직클래스에 들어갔다가 기겁하고 뛰쳐나와 다비가 듣는 힙합 댄스 강좌로 가지만 거기도 코넬리아의 자리는 아닌 것만 같다. 부모 노릇, 어른 노릇을 해야하는 전형적인 중년의 삶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20대 힙스터의 삶도 이들과 딱 들어 맞지는 않는다. 조쉬는 제이미를 따라 자전거를 타다 허리를 삐끗해 병원을 찾았다가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관절염은 관절이 퇴화되서 생기는 겁니다."
"제가요? 일시적인 게 아니라구요? 제 나이에 관절염이 생긴다구요?"
"나이가 몇인데요?"
"마흔넷이요."
"마흔에도, 마흔둘에도 생겨요."거기에 노안 진단까지 받는 조쉬, 자신이 그렇게 늙지는 않았다고, 나이는 숫자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병원에서는 '퇴화했다'는 진단을 내리는 나이다.
"기분이 희한해. 상상만 하던 일들을 직접 겪는 나이라니."
"전 솔직히 말하면 죽지도 않을 것 같아요."역시 늙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무지막지한, 젊은 제이미. 사실 제이미에게는 속셈이 있다. 조쉬의 장인, 그러니까 코넬리아의 아빠가 유명한 다큐멘터리의 거장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접근한 것. 우연을 가장해 조쉬와 코넬리아 커플과 친분을 쌓고 코넬리아의 아빠와 친해져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도 받고 유명세도 떨치겠다는 야망에 휩싸여 있는 사람이다. 사실 그렇지 않나. 그렇게 까지 남들과 다른 것, 힙한 것만 찾아다니는 활기찬 에너지의 동력이 어디서 나오겠나. 결국 남들과 선을 긋기 위한 자의식 과잉이며 야망이고 과시욕이다.
처음부터 제이미의 꿍꿍이를 의심한 코넬리아와 달리 조쉬는 그런 제이미의 본심을 모른 채 제이미가 함께 하자고 제안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제이미의 다큐멘터리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페이스북으로 자신의 사진을 건 계정을 만들어 처음으로 연락을 한 옛 동창친구에게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찾아가 답하는 것. 조쉬는 이 아이디어가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프로젝트에 들어가자 처음으로 연락해 찾아간 동창친구가 아프가니스탄의 참전용사에다가 전쟁 후유증으로 자살 시도를 해 정신병동에 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기획에서 무언가 의미있는 것들이 나오고 조쉬의 투자자까지 제이미의 다큐에 더 흥미를 갖는다. 조쉬가 그렇게 독립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한 코넬리아의 아버지까지 제이미의 다큐에 높은 점수를 준다. 그리고 조쉬는 점점 제이미의 미심쩍은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제이미가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했다는 걸 안 순간, 제이미는 이렇게 말할 뿐이다.
"존경하는 사람도 많고, 원하는 것도 많아요. 사람은 다 그렇잖아요?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요."제이미와의 일로 아내 코넬리아와도 불화가 생기기 시작하는 조쉬.
"저건 다 허세야! 진실된 인간인 양 흉내만 내는 거야!""못 할 일도 있고, 못 가질 것도 있는 나이"